참으로 세월이 빠르게 간다. 요즘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인생이 오십은 50마일로 가고, 육십은 60마일로 가고, 칠십은 70마일로 가고, 팔십은 80마일로 달린다더니 그래서 그런가.

허둥지둥 분주하게 밀려 왔다. 어제 내린 비로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모습을 보며 인생을 생각하고 한 해를 뒤돌아본다. 그러고 보니 어느 듯 졸지에 곧 11월을 맞이한다. 11월은 감사의 달이다. 신학자 몬테피오레는 ‘생각하고 감사하라'고 하였는데 1년을 뒤돌아보며 생각해보니 그저 감사한 일뿐이다. 그런데 그 ‘감사'를 놓치고 살아 온 것 같아 하늘을 우러러 부끄럽다.

어떤 환자가 병원을 찾아 왔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좋은 약만 써서 목숨을 제발 살려 달라'고 간청하여 명의가 명약을 쓰고 의술을 동원하여 치료하여 병이 다 나아서 퇴원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 환자는 치료비 청구서 내역을 보더니 꼬치꼬치 따져 가며 불평을 하면서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들었느냐고 화를 내며 싸우고 있다. 어디 갈 때 다르고 거기서 나올 때 다르다더니 그 격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자화상 아닌가. 마땅히 치러야 할 그 당연한 감사를 가지고 흥정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찬송가에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 다 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라는 가사가 있다. 입이 만 개가 있다고 해도 그 입 모두를 가지고 은혜를 감사하고 싶다는 찰스 웨슬리의 고백이다. 감사의 마음을 갖는 것이 행복이며 축복이다. 물질적이거나 물량적인 조건 때문에 감사하고 그게 좀 부족하거나 모자라면 이내 불평이나 하는 태도는 어린 아이나 하는 투정이다.

태어날 때부터 앞 못 보는 소경으로, 듣지도 못하는 귀머거리로, 말도 못하는 벙어리로 살았던 헬렌 켈러를 우리는 잘 안다. 그 여인의 자서전(the story of my life)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내가 단 하루만 볼 수 있다면 석양의 아름다움과 무지개의 영롱함을 보련다.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들을 수 있다면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련다. 그리고 내가 단 하루만이라도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의 솜씨를 찬양하련다.” 헬렌 켈러는 “단 하루만이라도 불 수 있기를, 단 하루만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단 하루 만이라도 말할 수 있기를 사는 날 동안 갈망했다”고 했다.

헬렌 켈러의 고백을 들으면서 다른 것은 모두 다 고사하고라도 내가 지금 이렇게 성한 몸으로 살고 있음을 생각할 때, 내가 그 동안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었음을 얼마나 감사해 보았던가? 생각하니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머리 둘 곳을 모르겠다.

이제 우리 감사하자. 불만하지 말고 불평도 하지 말고 그저 감사하자. 감사가 행복이요 축복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없으면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불행한 삶을 살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면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다하더라도 행복한 삶을 살게 될 수 있는 것 아니겠나.

그렇다, 현재의 여건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생활이 지난날 고통을 잊게 하는 길이며 미래의 축복이 들어오게 하는 지름길이다. 그래서 감사의 길은 계속 달려야 할 길이라 은퇴는 있을 수 없을 거다. 사람을 늙고 멋없게 만드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바로 감사를 잃어버리고 불평, 불만하는 노인의 추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