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직장인 A(35)씨는 얼마전 유럽 출장을 다녀온 후 며칠째 시차증에 시달리고 있다. 새벽이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늦잠을 자기 일쑤고, 출근해서도 오전 내내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이러한 상태를 시차증 탓으로 돌리던 것도 처음 며칠뿐, 유럽 체류 기간보다도 긴 시간이 흐른 뒤에도 증상이 계속되자 A씨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뿐 이러한 상태가 출장 전부터 꽤 오랫동안 지속돼왔던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출퇴근 시간에 얽매인 직장인이 되고부터, 아니 '새벽별 보기 운동'을 실천해야했던 학창시절부터 잠 못 드는 밤과 힘겨운 기상, 멍한 오전은 반복돼 왔다.


생체 시간이 사회적 시간과 다른 데서 오는 이른바 '사회적 시차증(Social jetlag)'이다. 이 '사회적 시차증' 개념을 소개한 독일의 '시간생물학자' 틸 뢰네베르크는 책 '시간을 빼앗긴 사람들'(추수밭 펴냄)에서 우리 몸 속 시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생체시계 대신 사회적 시계를 강요당하는 현대인이 처한 위험성을 보여준다.


저자는 "체내 시계가 만들어내는 개개인의 체내 시간은 몸집, 눈 색깔, 성격처럼 사람마다 다르다"고 말한다.


아침잠이 없는 종달새형 인간이 있고, 밤이 될수록 정신이 맑아지는 올빼미형 인간도 있으며, 하루에 두어 시간만 자도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남들보다 두 배 정도 잠이 많은 사람도 있다.


연령별로도 수면 패턴이 다르다. 신생아는 수유 리듬에 따라 24시간보다 훨씬 짧은 주기로 자고 깨다가 차츰 하루 단위 리듬으로 나아간다. 어린 아이들은 대체로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빠른 시간유형'이며 그 뒤로 시간유형이 늦어져 청소년기 학생들은 완전히 올빼미가 된다고 한다.


오늘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아침 잠자리에서 엄마나 알람시계와 씨름하고, 학교에 가서는 오전 내내 기면증 환자처럼 앉아있는 것은 전날 디스코텍에서 새벽까지 놀거나 컴퓨터 게임으로 밤을 지새웠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10대의 생체 시계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실제로 "디스코텍에 드나들지 않고 일생을 실험실에서 보낸 동물들에게도 사춘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시간유형이 늦어진다"며 "청소년기에 시간유형이 늦어지는 것은 청소년들이 자의적으로 택한 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생물학적 프로그램"이라고 말한다.


등교시간을 1시간 늦추자 학생들의 출석률과 성적, 의욕, 심지어 식습관까지 여러 가지가 개선됐다는 연구 결과도 체내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사례다.


일부 국가에서 시행하고 있는 서머타임도 체내 시계와 사회적 시계의 격차를 벌려 사회적 시차증을 더욱 악화시킨다고 이 책은 말한다.


"계절적 변화를 3주 정도 거스르는 서머타임으로의 전환은 하루아침에 서쪽으로 15도 정도 여행해 그곳에 체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략) 시간 전환을 통해 생체 시간 시스템에 개입하는 것은 우리의 사회적 시차증을 더 악화하고 수면량을 줄인다."(234-235쪽)


서로 다른 체내 시계를 가진 가족의 부산한 아침, 빛으로 시간 감각을 가질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체내 시계 등 저자가 등장시킨 다양한 인물들의 가상 사례가 다소 이론적일 수 있는 책 속 논의를 한결 풍부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