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다. 광주 인화학교에서 장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어진 성폭행 실화를 다룬 영화 ‘도가니’가 개봉 10일 만에 관객 200만을 넘어서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영화의 흥행은 그 이상의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해당 관청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여론이 들고 일어나면서, 급기야 경찰은 사실상 재수사에 착수했고 국회는 소위 ‘도가니 방지법’ 입법 논의에 들어갔다. 정치인들도 앞다퉈 이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 컨텐츠가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시사해주는 한 단면이다.
기독교 문화는 지난 십수 세기 동안 세상의 문화를 지배해왔고, 그 자체가 문화의 거의 전부이던 시절도 있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 문화는 세속 문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앞서는 측면도 많았다. 수많은 예술인들이 교회를 통해 배출됐고, 기독교를 모티브로 한 예술 작품들도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한 문화적 접촉점을 통해 교회를 찾게 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 문화의 현실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 없다. 기독교 문화는 세속 문화의 아류와도 같이 전락하고 말았다. 완성도 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을 뿐더러, 대중들에게 흥미도 끌지 못하는 현실이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의 일상에서조차 멀어져 버린 것이 오늘날 기독교 문화의 현주소다. 오죽했으면 기독교 절기 중 가장 대표적 절기인 성탄절마저 세속적·상업적 문화에 점령당했겠는가.
문화가 활성화되려면 창조적이고 특출한 문화 인재들이 양성돼야 하고, 그들에 의해 고품격 문화 컨텐츠가 생산돼야 하며, 그것을 사용하고 즐기는 문화 소비자들이 있어야 하고, 그 소비를 통해 창출된 자본이 또다시 문화 인재 양성 및 문화 컨텐츠 생산에 투자되는 선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다른 모든 과정이 활발히 일어난다 할지라도 어느 하나가 침체된다면 문화는 죽어버린다.
기독교 문화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인재들은 교회에 등을 돌리고, 그러다 보니 고품격의 문화 컨텐츠가 나오지 않으며, 당연히 소비자들은 흥미를 잃고, 인재와 컨텐츠에 투자할 자본도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뒤늦게 몇몇 대형교회나 대형교단들을 중심으로 기독교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큰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한 번 깨져버린 선순환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문화는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앞으로의 선교에 있어 그 중요성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문화적인 측면에 소홀한 교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을까. 대중들의 흥미가 자발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지도자와 문화 생산자들의 마인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지도자가 먼저 이 시대 문화를 통찰하고 리드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문화 사역자들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물론 이것이 순환을 일으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기다림에 지쳐서 중단해서는 안 된다. 그 노력이 계속된다면 기독교 문화계에도 언젠가는 박태환·김연아와 같은 인재들이 나타날 것이고, ‘도가니’나 ‘나는 가수다’를 능가할 만한 컨텐츠와 아이템이 생산될 것이다.
영화의 흥행은 그 이상의 사회적 파장을 낳고 있다.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해당 관청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여론이 들고 일어나면서, 급기야 경찰은 사실상 재수사에 착수했고 국회는 소위 ‘도가니 방지법’ 입법 논의에 들어갔다. 정치인들도 앞다퉈 이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하고 있다. 잘 만들어진 하나의 문화 컨텐츠가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시사해주는 한 단면이다.
기독교 문화는 지난 십수 세기 동안 세상의 문화를 지배해왔고, 그 자체가 문화의 거의 전부이던 시절도 있었다. 불과 수십 년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 문화는 세속 문화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앞서는 측면도 많았다. 수많은 예술인들이 교회를 통해 배출됐고, 기독교를 모티브로 한 예술 작품들도 많이 쏟아져 나왔다. 그러한 문화적 접촉점을 통해 교회를 찾게 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 문화의 현실을 보면 씁쓸하기 그지 없다. 기독교 문화는 세속 문화의 아류와도 같이 전락하고 말았다. 완성도 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많을 뿐더러, 대중들에게 흥미도 끌지 못하는 현실이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의 일상에서조차 멀어져 버린 것이 오늘날 기독교 문화의 현주소다. 오죽했으면 기독교 절기 중 가장 대표적 절기인 성탄절마저 세속적·상업적 문화에 점령당했겠는가.
문화가 활성화되려면 창조적이고 특출한 문화 인재들이 양성돼야 하고, 그들에 의해 고품격 문화 컨텐츠가 생산돼야 하며, 그것을 사용하고 즐기는 문화 소비자들이 있어야 하고, 그 소비를 통해 창출된 자본이 또다시 문화 인재 양성 및 문화 컨텐츠 생산에 투자되는 선순환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한다. 다른 모든 과정이 활발히 일어난다 할지라도 어느 하나가 침체된다면 문화는 죽어버린다.
기독교 문화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라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인재들은 교회에 등을 돌리고, 그러다 보니 고품격의 문화 컨텐츠가 나오지 않으며, 당연히 소비자들은 흥미를 잃고, 인재와 컨텐츠에 투자할 자본도 줄어드는 악순환이다.
뒤늦게 몇몇 대형교회나 대형교단들을 중심으로 기독교 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노력에 적극 나서고 있으나 큰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미 한 번 깨져버린 선순환을 다시 일으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문화는 매우 중요한 영역으로, 앞으로의 선교에 있어 그 중요성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문화적인 측면에 소홀한 교회에 대해서는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을까. 대중들의 흥미가 자발적으로 되살아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지도자와 문화 생산자들의 마인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지도자가 먼저 이 시대 문화를 통찰하고 리드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그것을 바탕으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문화 사역자들이 역사의식을 가지고 이를 뒷받침해줘야 한다.
물론 이것이 순환을 일으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결코 기다림에 지쳐서 중단해서는 안 된다. 그 노력이 계속된다면 기독교 문화계에도 언젠가는 박태환·김연아와 같은 인재들이 나타날 것이고, ‘도가니’나 ‘나는 가수다’를 능가할 만한 컨텐츠와 아이템이 생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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