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존심까지 다 보여주는 사람들을 가리켜 한자어로 간담상조(肝膽相照)인데 이말의 뜻은 ‘상대에게 간과 쓸개를 꺼내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말은 간헐적으로 구세대 부모님들이 결혼한 자녀의 집을 방문했을때 아들이 앞치마를 하고 부엌에 들어가 설거지를 하고있는 것을 볼때 화가 나서 사랑하는 아들에게 호통치기를 “너는 남자로서 자존심도 없냐” “남자가 뭐 할일이 없어 앞치마를 하고 부엌에서 설거지를 해”, 그리고 며느리가 하자는데로 아들이 따라갈때 그것을 보기 좋게 보지 못하면 며느리가 없는데서 아들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속도 없냐? 니! 마누라가 하자는대로 무엇이든 다 따라서 하게”라고 불평을 늘어 놓는다. 이러한 말은 길거리에 갈때 언제나 남자들이 아내들 보다 다섯발 앞서 걸어가던 가부장제도와 ‘남자는 높고 귀하며 여자는 낮고 천하다’고 여기는 ‘남존여비(男尊女卑)’ 봉건주의 사회의 풍조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러한 사상을 남녀가 동등하게 밖에서 일을 하고 가정의 일을 아내들에게만 하라고 강조를 한다면 이것은 핵가족을 이루고 사는 현대인의 사회속에서 각 가정들에 큰 갈등을 초래할 것이다.

이러한 속에서는 부부사이의 신뢰형성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아내들에게는 “쉼”이라는 것은 하나의 꿈에 불과한 것이다. 가끔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다보면 가파른 언덕과 내리막길을 걸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아내의 손을 끌어 당기어 오르막길에 오를때 힘을 덜어 주고 내리막 길에서는 아내가 안전하게 내려 오도록 손과 몸을 잡아 주면 그럴때마다 아내는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낀다. 그리고 차도의 길가를 걸어갈때 아내의 안전을 위해 아내는 안쪽에 필자는 차도쪽에 가까운 인도를 걸어간다. 이것은 필자 뿐 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부부들이 하고 있는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의 예의라고 믿는다. 특별히 핵가족과 이민사회를 살고 있는 부부들에게는 서로간의 “신뢰의 형성”이 깊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신뢰가 사랑을 이루어가기 때문이다. 부부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랑을 이루고 행복을 이룰 수 있는 폭의 한계가 줄어들뿐 아니라 서로가 어떤 말을해도 불신만 쌓아가게 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사소한 일에 대해 쉽게 화를 내게 되는데 그것들은 집안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되면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은 집안에서 놀면서 도대체 뭐하는 거야?”, 그리고 TV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는 남편에게 “당신은 시간만 나면 TV만 보고 아이들하고는 전혀 놀아주지 않고 뭐하는거야?”라며 짜증을 부릴 것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소한 일들이고 얼마든지 부부가 서로 신뢰하면 쉽게 넘어갈수있는 것들인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이해력과 사랑이 부족한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우펜베르크에 의하면 ‘신뢰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행복을 누릴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덕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리고 모든 숭고한 행위의 근원을 상실하게 된다.’ ‘부부의 신뢰를 상실하면 부부의 근원이 되는 사랑에도 상처를 입게 된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는 폭이 약하다고 생각한다면 서로를 향한 신뢰를 지속적으로 형성해야 할 것이다. 비록 그것이 쉽지 아니하다 할지라도 계속적인 노력을 한다면 지난 과거의 잘못들이 이해될 것이며 사랑으로 모든것을 용서할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것을 성경에서 보자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뢰하고 사랑한 것이며 그 예가 바로 호세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쫒아 이스라엘에서도 유명한 방탕한 여자인 고멜과 결혼을 하는 것이다. 고멜은 가정에 충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다른 남자와 상종하여 자녀를 낳았는데도 호세아는 고멜을 버리지 않고서 마지막까지 사랑을 보인 “사랑의 실천자”로 그는 행함과 진실로 아내를 사랑하였다. 이것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삶이 어려우면 하나님을 의존하지 아니하고 그때마다 주변의 강대국인 애굽과 바벨론을 의존한 것을 음란하고 무절제한 것으로 묘사한 것이며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는 매번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기를 바랐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올때마다 사랑으로 축복하셨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신랑과 신부로 묘사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하나님의 자녀들 또한 신랑과 신부의 관계인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렇게볼때 주님의 품을 떠난 신부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진리라고 믿는다. 행복하려면 주님과의 관계의 형성이 삼겹줄이 되어야 하는데 이 삼겹줄은 아무리 거센 폭풍과 살을 에이게 만드는 삶의 고통의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해도 주님과 사랑의 관계에서 끊어질 수 없는 것인데 그 이유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시는 주님이 신랑이 되시기 때문이다. 주님과 삼겹줄의 관계처럼 부부간에도 삼겹줄의 관계형성이 이루어져야한다. 그것은 바로 ‘부부의 사랑과 신뢰와 신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의 바탕은 부부가 서로의 신뢰가 이루어져야 사랑도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신앙생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뢰관계의 출발은 결혼을 한 부부들이 자신의 배우자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최고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부부가 서로에게 이러한 확신을 주어야 하는데 “당신은 나에게 최고의 기쁨이야!”, “하나님이 나에게 최고의 베필을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을 할때마다 ‘행복감과 만족의 감격’을 맛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로의 작으만한 허물에 대해 ‘용서와 이해의 마음’을 가지게 되면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존경하라고 강조 하지 아니하여도 아내가 남편에게 사랑을 기대하지 아니하여도 서로에게 존경과 사랑이 물이 시냇가를 따라 흐르듯이 흘러갈 것이며 사랑의 강물이 메마르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서로에게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그 가정의 부부간의 신뢰는 무한할 것이라 생각된다. 디모데전서 6:18절에서 말하기를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 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은 부부에게도 서로가 서로의 것을 공유하고 동시에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서로가 신뢰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인데 이것은 부부가 사랑을 이루며 살아가는데 소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