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어느 지하 교회 목사가 시베리아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여러 번 엄한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복음을 증거하다가 결국은 체포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감옥소에 들어 간 그 목사는 춥고 배고픔 때문인지 곧 자기가 왜 잡혀 들어와야만 했는지 깜박 그 이유를 잊어 버렸습니다. 자기 자신이 괜히 서글프고 외롭게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무심하기까지 했습니다. 스스로 불쌍하게 여겨지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아주 절친한 이발사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이발사는 목사 친구의 체포 소식을 듣고는 자기도 아예 이발소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디론가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했지만, 실은 자기 친구 목사를 만나기 위하여 시베리아, 그것도 바로 그 수용소에 까지 가서 일자리를 구했던 것입니다. 바로 수용소 죄수들의 머리를 깎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가 그 일을 한 지 여러 주일이 지난 후, 아니나 다를까 목사 친구가 머리를 깎으러 들어 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들어 오는 친구의 모습은 초췌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듯, 아무런 표정도 없는 눈동자는 방바닥을 향해 있었습니다. 머리를 다 깎을 때까지도 목사 친구는 자기 머리를 깎아 주는 사람이 자기의 친구라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머리를 정성스레 다 깎은 후, 그 이발사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었습니다. “이봐 … 턱 좀 들지 그래 …”

그러면 성경은 외로움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시나요?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 심지어는 아담이 죄를 지은 후에도 찾아 오셨습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9). 그러한 하나님은 아담과 함께 죄인 된 우리들까지도 찾아 주셨습니다. 찾기만 하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형성을 위하여 엄청난 대가까지 치러 주셨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그리고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를 놓지 않으시고 사랑으로 붙들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5, 38-39). 바로 그 예수님은 자신이 잠시 우리로부터 떨어져 있는 동안이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하여야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무슨 말인가요? 바로 외롭고 싶은 사람만 외롭다는 말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인물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850 명을 상대로 장쾌한 결투를 벌였던 사람입니다. 백성들에게는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 18:21)하고 큰소리를 쳤던 사람입니다. 심지어는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왕상 18:40)고 까지 호통을 쳤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도 외로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세벨 왕후의 추적을 피해 호렙 산 동굴에 숨어 있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온 푸념을 다시 한 번 들어 보실까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왕상 19:10).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같은 푸념을 합니다(왕상 19:14). 그런데 엘리야가 정말 엘리야 자신이 말한 것처럼 혼자였는가요? 그리고 그러한 엘리야의 불평에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는가요?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7).

스스로 외롭다고 느끼는 것은 병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병이 계속 우리 안에 남아 있을 때,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 마음의 상처가 깊고 오래될수록 우리는 영육간에 더욱 약하여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그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누가 일으키겠느냐”(잠 18:14).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라도 “왜 나는 혼자일까?”하는 궁상으로부터 속히 벗어나야 합니다. 이 세상 끝날까지 나와 함께 하시겠다던 예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마 28:20).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외로운 사람들을 찾아 나설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외로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요? 그 많은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위로할 생각을 해 보십시다. 과연 나에게 외로운 시간이 있을 수 있겠는지 …


김성국 목사(리빙워드 한인 침례 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