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소명과 사회적 목적과 기독교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새로운 부류의 페미니스트들이 부상하고 있다. 사라 패일린(Sarah Palin)과 미셸 바크먼 (Michele Bachmann) 의원 등 보수적인 기독교 여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스크립스하워드뉴스서비스(Scripps Howard News Service)의 칼럼리스트이자 'It Takes a Parent'의 저자 베치 할트(Betsy Hart)는 “페미니즘이란 용어는 비기독교 페미니스트 운동에서 가져왔다.”며, “기독교인과 젊은 비기독교 여성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전통적인 페미니즘에 대해, 매우 화난, 남성을 혐오하며, 귀에 거슬리는 말을 하며, 매력이 없는 불행한 여성을 연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패일린과 바크만 같은 기독교 여성들은 페미니스트를, 보수적이고 친생명적이며 직업에 대한 소명을 지니는 동시에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까지 포용하는 여성으로 재정의한다.

2010년 연설을 통해 패일린은, 그녀 자신과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연관성을 끌어내며, 그 용어를 여성성이 여성 자신의 성공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며 자부심이 강하고 친생명적인 기독교인으로 재설정했다. 바크만은 부분적으로는 그녀 자신의 여성적 직관 때문에 정치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점점 더 많은 보수적 기독교 여성들이 페미니즘의 초기 뿌리를 돌아보고, 그들에게 찬사를 보내며, 모방할 많은 것들을 찾게 한다.

미국을 위해 걱정하는 여성(Concerned Women for America)의 베벌리라하예 연구소(The Beverly LaHaye Institute)의 이사이자 선임연구원인 재니스 쇼 크라우즈(Janice Shaw Crouse) 박사는 "신앙을 지니고 있던, 초창기 페미니스트들은 매우 독실했으며 성경이 여성을 남성과 평등하게 대하며 동일한 기회를 주었다고 말했다."고 했다.

할트는 "페미니스트 운동은 여성에게 고통을 주는 법적인 불평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재창되었다."고 덧붙였다.

페미니스트 운동은 19세기에 사회적 목표와 투표권에 초점을 맞춰 시작됐다. 엘리자베스 캐디 스탠톤(Elizabeth Cady Stanton)과 수잔 앤서니(Susan B. Anthony)등 페미니스트 선구자들은 노예 제도의 폐지와 여성의 투표권을 위해 투쟁했다.

크루이즈는 "오랫동안 비기독교 페미니스트들과 종교적인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이라는 같은 정의를 위해 활동했다."라며, "그러나 지난 30년 사이 변화가 일어났다. 페미니즘은 직업 할당과 임산부 요구에 의한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과 레즈비언들에게 떠맡겨졌다."고 말했다.

낙태와 직업 할당을 강조하는 쪽으로의 변화는, 많은 기독교 여성들을 페미니즘 운동으로부터 완전히 몰아냈다. 할트는 "기독교 여성들은 귀에 거슬리는 말들과 여성의 정치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으로부터 뒷걸음질 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시작되어 21세기까지 지속되어 온 변화 속에서, 많은 비기독교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적으로 보았으며, 이는 기독교 여성들을 그 운동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또 다른 이유로 작용했다.

크루이즈는 "우리는 우리의 남편과 아들과 아버지를 사랑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감사하며, 우리의 삶에 대한 그들의 기여를 높이 산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일터는 비기독교 페미니스트들과 기독교 여성 사이의 분쟁의 부분이 되고 있다.

기독교 여성과 비기독교 여성 사이의 직업에 대한 긴장은 두 그룹이 성공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와 관련된다. 기독교 여성들은 직장 내 표창이나 승진을 구하지 않는 대신, 자신들의 직업을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소명의 한 부분으로 본다.

크루이즈는 "일반적으로, 기독교 여성들은 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도전과 책임감 때문에 일한다."고 덧붙였다. "많은 기독교 여성들은 부수적 수입으로 가족을 돕기 위해 시간제로 일하며 그들의 일을 직업으로 여기거나 그들 자신을 직업여성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이 자신의 남편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현대 비기독교 페미니스트들과 판이하게 다른 관점이며, 여성이 된다는 것에 있어서 근본적인 불일치이며, 상이한 세계관이다."

많은 기독교 여성들은 그들이 일과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할트는 "기술의 혜택을 통해, 더 많은 여성들이 우리 어머니들이 해낼 수 없었던 것들을 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많은 기독교여성들은 여성들을 위해 언제, 어떻게 일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닦은 초기 페미니스트들에게 감사한다. 그러나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초기 종교적인 페미니스트들의 이상주의로 회귀하는 반면, 기독교 공동체들은 계속해서 현대 비기독교 페미니즘과 싸우고 있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에 대해 말할 때, 예수님이 우리에게 남성과 여성의 가치에 대해 가르쳐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에 대해 저술하고, 강연한 마르디 카이즈(Mardi Keyes)는 "그는 인종적, 경제적, 도덕적, 종교적으로 무시를 받는 사람들의 친구가 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회적 금기를 깼다."고 말한다.

카이즈는 "예수는 여성들이 실질적으로 모든 면에서 불리하게 취급되었던 세계에 들어오셨다." 고 말한다. "그의 가르침과 행동에 의해, 그는 계속해서 그의 문화의 가부장적 기준에 도전했다. 예를 들어, 예수는 그의 제자 여행에 그들을 포함시킴으로서 여성을 분리하고, 침묵하게 하는 관습을 거부했다."

기독교와 페미니즘의 화해는 두 그룹이 함께 문제를 보며 해결책을 찾으려는 시도를 해야 한다고 인정할 때 시작될 수 있다. 카이즈는 포르노그라피, 강간, 근친상간, 가정 폭력, 근무 상태와 심지어 낙태와 싸우는 기독교인과 비기독교 페미니스들의 동맹을 지적했다.

카이즈는 "현대 페미니즘은 섹스와 젠더에 관한 신학을 재검토하기 위해 교회에 도전해 왔다."고 말한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가난한 자들, 절름발이들, 눈먼 자들, 갇힌 자들과 모든 억눌린 자들에게 가져왔던 복음이 참으로 여성들에게 좋은 소식이었다는 것을 재확인해 준, 성서와 관련된 모든 학문에 대해 깊이 감사해야 한다."

기독교 여성들은 아내와 어머니로서 그들이 세계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야하는가에 대한 모범을 보여준 초기 페미니스트들에게 시선을 돌려야 한다. 경제가 남성을 선호하는, 근력에 기초한 노동으로부터 여성을 선호하는, 서비스 지향적인 노동으로 대체되면서, 여성은 그들의 차이를 드러낼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크루이즈는 "나는 오늘날 기독교 여성들이 하는 것들을 보면 흥분된다."고 말한다. “오늘날 특출한 여성들의 목록을 관찰해 보면, 복음주의 기독교 여성을 좀처럼 보기 어렵다. 그러나 만약 그들의 가능성을 이용하는 여성을 찾길 원한다면, 정말로 놀라운 일들을 하고, 많은 성취를 이루는 수 백명의 충분히 헌신된, 복음주의 여성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