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쉘 바크먼 하원의원이 공식석상에서 농담조로 던진 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 일어난 지진과 허리케인이 미국 재정적자 감축을 위한 하나님의 경고의 목소리라는 뉘앙스로 던진 그의 말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물론 바크먼 의원이 피해자들을 우롱하기 위해 위와 같은 발언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유머감각이었을 뿐”이라는 바크먼 의원의 항변에 전혀 공감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으로서 자신의 신앙을 가감없이 드러내며 대선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그의 위치를 고려할 때 “조금 더 생각하고 말했다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요사이 기독교를 깍아내리지 못해 안달하는 일부 언론들과 ‘신정정치(Theocracy)’ 비판론자들의 야유가 뒷따른 것은 물론이다.

자연재해에 관한 종교적 해석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심판의 임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다”고 섣불리 말한다면, 피해자들의 심정은 어떻겠는가? 우리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그 분의 뜻 앞에서, 완전한 계시이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겸허히 서야 할 것이다.

기독교인을 향한 질타는 대부분 “말”에서 시작된다.

때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쉽게 말을 내뱉어 상처 주고 상처 받는 일들을 보게 된다. 안타까운 일이다. 로마서 2장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2:1)”라고 지적한 바 있다.

믿는 우리에게는 믿지 않는 이들과 동일한 죄가 있다. 바울이 말했듯이 다만 다른 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것”이다. 믿는 사람 간에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독교인의 사명은 정죄가 아니라 용서이며, 서로에게 진리를 알게하는 것 뿐인 것이다.

심판의 때를 선포하는 광야의 외침도 필요하지만, “말씀”을 가진 기독교인의 사명을 돌아봐야 한다. 한 때 유대인들 사이에 ‘지옥의 불쏘시개’로 불린 이방인인 우리에게까지 십자가 사랑을 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원수 갚음이 아닌 용서를 선포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잊어버리는 듯 하다.

행동은 말에서, 말은 생각에서 시작된다. 기독교를 향한 손가락질이 난무한 시대에 더욱 묵상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