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을 살며 고난을 겪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을 만날 때 반응과 태도는 다 다릅니다. 그리고 그 반응과 태도에 의해 우리의 인생의 격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나사로 가정이 고난을 만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모도 없이 오빠를 의지하고 마르다 마리아 자매가 열심히 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가정이라고 할 만큼 믿음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집안의 기둥인 오빠 나사로가 갑자기 병이 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위급 했는지 하루 길에 계신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서 도움을 청했는데, 예수님은 오시지는 않으시고, 즉 고난의 문제는 해결해주시지는 않으시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 한 인간이 중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는 급박한 소식을 들으신 주님께서 태연하게 하신 말씀치고는 엉뚱해 보이는 말씀이십니다. 대체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불행에 빠뜨리고서야 영광을 얻으시는 분이라는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고난을 통해 나타날 것이라고 말씀 하신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는 ‘독사(doxa)’인데, 이 단어의 어원인 동사 ‘도케오’는 세 가지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짐승과 달리 인간에게 이성이란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통해 본능을 다스리고 욕망을 이겨내어야 하는데 만약 생각이 없으면 짐승과 별반 차이가 없는 삶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육체와 세상이 하는 대로 살다가 아픔과 실패를 겪게 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생각하게 됩니다. 그제야 자신을 돌아보고 자기 성찰을 하게 됩니다. 저는 이제까지 중병에 걸려 있는 사람이 병석에 누워서 어떻게 육체의 쾌락을 위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탕 할 수 있을까 골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둘째, 생각하긴 하는데 언제나 옳고 바르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기꾼들도 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쉴 사이 없이 생각합니다. 염려와 근심의 생각도 밤을 새우며 하게 됩니다. 자기 욕망을 이루기 위한 생각에도 많은 시간을 빼앗깁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그릇된 생각은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참으로 아프지 않고서는 참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미우라 아야꼬 여사의 고백은 절대 거짓이 아닌 진실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지식과 업적을 찬양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고난이 다가오면 그것들이 깨어지게 됩니다. 건강이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능력이나 지식이나 업적이 나를 붙들어 줄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유한함을 통감하는 사람만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분께 자신을 의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신앙 안에서 고난을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깊은 신앙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때로 임하는 질병이나 실패는 결코 불행일 수 없습니다. 그것이야말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하나님의 은총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참된 믿음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