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배우고 (博學), 자세히 배운 것을 물으며(審問), 생각을 신중하게 하며(愼思), 사리를 명확히 분별하고(明辨), 독실하게 행하여야 한다(篤行).” 이는 ‘중용(中庸)’에 나오는, 배우는 자의 학문을 대하는 태도를 교훈하는 글이다. 이에 주자(朱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학문을 하는 방법에서, 배운다면 능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며, 묻는다면 알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며, 생각한다면 얻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며, 분별한다면 분명하지 않으면 그만두지 않으며, 행한다면 독실하게 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남이 한번만에 잘하더라도 자신은 백번을 해서라도, 남이 열번만에 잘한다면 자신은 천번을 해서라도 잘할때까지 힘써야 한다”

朱子는 하지 않으려면 아예 하지 말되, 하려면 남보다 공을 백번을 더 들이더라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배우는 자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태도가 博學審問인 것이다.

梨花女大 한국인 초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 박사가 1922년 10월 오하이어 주 “웨슬리언 대학” 유학시절의 있었던 일화이다. 이화에서 수료한 공부를 영어과목을 제외하고 2년까지 인정하여 3학년에 편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어 과목 만큼은 1학년 과목을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김활란이 그 과목의 수업 내용을 검토해 보니 이화에서 이미 수강한 내용들이었다. 이에 교무과 교수를 찾아가서 “교수님 저는 영어 과목 수강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외국인 학생이긴 하지만 제가 택하고 싶은 과목 내용을 듣겠습니다. 3학년 영어가 너무 어렵다면 2학년 영어는 해 볼 수 있습니다. 이미 배운 1학년 내용을 되풀이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 교수는 공부하는 유학생 중에는 아무도 2학년 영어부터 수강한 전례가 없습니다. 그러니 1학년 과목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굽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서로 고집하는 중에 교수는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정 그렇다면 당신의 실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시험을 치르면 어떠하겠소 ? “네 하고 말고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하고 김활란은 선뜻 대답하였다. “ 그럼 기간을 내일까지로“
하고 ‘ 나는 왜 1학년 영어 공부과목을 거부하는가 ? ‘ 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써 내시요 “ 하였다. 이에 김활란은 대단한 열의와 신념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작문을 작성 제출하였다.

“교과목을 충분히 검토해 본 결과 그것은 이미 배운 것들이다. 같은 것을 되풀이하고자 이렇게 타국에까지 멀리서 온 것이 아니다. 나는 고국에 빨리 돌아가서 해야 할 일들이 있다. 단 1분도 소중한 시간이다. 좀 더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새로운 지식과 경험을 얻는 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기 위한 나의 소중한 시간을 보호하기 위하여 1학년 영어 과목 신청을 거부한다 .”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이틀이 지난 뒤 김활란은 영어 2학년 과목을 듣게 되었다. 사명과 목표가 뚜렷한 학생에게 볼 수 있었던 일화이다. 매 9월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는, 배움의 열림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어린이 한글 학교를 비롯하여 기술학교, 영어학교, 취미학교, 일반 대학교, 신학교, 시니어 학교 등 각종 학교들이 일제히 개강한다. 학교 문을 넘나드는 모든이들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학생 김활란과 같이 분명한 목표와 사명이 있어 모든 학생들이 博學審問의 자세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함이다.

가끔 언론 매체를 통해 안 좋은 소식이 들려 온다. ‘비자장사, 신분유지용, 학교 급습, 추방’ 등 듣기 거북한 용어들이다.

배우는 자나 가르치는 자나 부끄러워야 할줄로 안다. 저마다의 안타까운 형편들이 있다. 그러나 각자의 형편이야 어찌하든 일단 책상 앞에 앉은 이상 최선을 다하는 자세이기를 바란다.

필자도 그러한 처지의 분들과 오랜 기간(약7년)을 공부하였던 경험이 있다. 주경야독이 이민의 삶 속에서 말 같이 쉬운 것이 아님을 잘 알지만 그것을 잘 극복한 자가 누리는 복된 결과는 더 잘 알고 있다. 같은 교실에서 같은 시간에, 환경에 눌리어 조급함으로 수업에 임하는 학생이 아니라, 불편한 환경에서도 새로운 지식과 학문을 위해 갈급함이 있는 제2의 김활란과의 대면함을 새 학기에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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