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께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거의 25년전 코스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에 유학생으로 코스타 간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식사할 틈도 없이 바빴습니다. 식당 밖에서 잠시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과 대화를 가졌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가까이 놓였던 성경책을 집어서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꽤나 시간이 걸려서 설명을 듣던 학생이 결신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다 마치고 성경책 주인이 누구인지 이름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성경책이었습니다. 자신의 성경책을 찾다가 그 성경책을 들고 상담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먼 발치에서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다가와서 결신한 내용을 들으시고 크게 기뻐하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작년에 일본에 갔을 때 잠시 뵈었습니다. 오전에 투석을 하시고 병원에서 나오시는 길에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사모님도 자리를 비켜 주신 가운데 간단한 중국식 점심을 들면서 오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일본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나누셨습니다. 한류를 통해서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고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시면서 선교의 꿈을 말씀하셨습니다. 일본과 중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곳곳에서 선교의 불길을 일으키는 사역을 감당하셨는데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에도 진출을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워싱턴은 불편한 일이 있어서 못 오신다고 하셔서 이제 그런 일 없을 것이니 본격적으로 국제 질서의 중심인 워싱턴으로 진출하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특별히 문화 선교의 일환으로 워싱턴의 유력한 언론 기관을 기독교 자본이 인수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반짝이는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대화는 일본에서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방송과 출판, 음악과 영화 등의 콘텐츠를 훝고 나서 목회에 접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스스로 당신의 메시지를 평가하셨습니다. 아무개 목사 하면 떠오르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있는 법인데 본인은 그런 것이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발견하셨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하용조 목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 지 생각해 보니 뚜렷한 메시지가 떠 오르지 않았답니다. 자신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정리해서 죽는 날까지 그 메시지만 전하고 죽을 때 사람들이 하용조 목사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고민하면서 정리하셨던 자신의 메시지를 몇 가지 정리해 주셨습니다. 하나 하나 언급할 때마다 평생의 사역과 헌신, 지난 수년 동안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거친 고난의 종의 모습이 배어 나왔습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중량감 있게 설명하시고는 물으셨습니다. "장 목사는 평생 전할 메시지가 있나?" "예, 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없이 뒤 늦게 목회를 하겠다고 뛰어 들기 어렵죠." "그게 뭔데?" "말씀 안 드릴 겁니다." "왜?" "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지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말해 줘야지 설교한 사람이 자기 주제를 말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지 봐야죠." 그것도 말이 된다고 하시면서 크게 허허 웃으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한국 교회의 존경 받는 어른과 이런 일로 저런 관계로 엮여서 지내 왔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추억과 복음의 열정을 나눈 추억이 남아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약함을 축복으로 여기시고 찬양에서 말씀까지, 큐티 교재에서 위성 방송까지, 일본에서 이스라엘까지 사역과 선교의 비전을 펼치셨던 목사님께 다시 한번 사랑과 존경을 부쳐 드립니다.
거의 25년전 코스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에 유학생으로 코스타 간사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수양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식사할 틈도 없이 바빴습니다. 식당 밖에서 잠시 벤치에 앉아 있던 학생과 대화를 가졌습니다. 대화를 통해서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가까이 놓였던 성경책을 집어서 복음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꽤나 시간이 걸려서 설명을 듣던 학생이 결신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다 마치고 성경책 주인이 누구인지 이름을 찾아 보았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의 성경책이었습니다. 자신의 성경책을 찾다가 그 성경책을 들고 상담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먼 발치에서 지켜 보고 계셨습니다. 다가와서 결신한 내용을 들으시고 크게 기뻐하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작년에 일본에 갔을 때 잠시 뵈었습니다. 오전에 투석을 하시고 병원에서 나오시는 길에 점심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사모님도 자리를 비켜 주신 가운데 간단한 중국식 점심을 들면서 오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일본 선교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나누셨습니다. 한류를 통해서 선교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고 어린아이처럼 흥분하시면서 선교의 꿈을 말씀하셨습니다. 일본과 중국,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곳곳에서 선교의 불길을 일으키는 사역을 감당하셨는데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씨에도 진출을 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워싱턴은 불편한 일이 있어서 못 오신다고 하셔서 이제 그런 일 없을 것이니 본격적으로 국제 질서의 중심인 워싱턴으로 진출하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습니다. 특별히 문화 선교의 일환으로 워싱턴의 유력한 언론 기관을 기독교 자본이 인수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반짝이는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대화는 일본에서 세계를 한 바퀴 돌고, 방송과 출판, 음악과 영화 등의 콘텐츠를 훝고 나서 목회에 접어 들었습니다. 목사님은 스스로 당신의 메시지를 평가하셨습니다. 아무개 목사 하면 떠오르는 핵심적인 메시지가 있는 법인데 본인은 그런 것이 없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발견하셨답니다.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하용조 목사는 어떤 메시지를 전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될 지 생각해 보니 뚜렷한 메시지가 떠 오르지 않았답니다. 자신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정리해서 죽는 날까지 그 메시지만 전하고 죽을 때 사람들이 하용조 목사의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동안 고민하면서 정리하셨던 자신의 메시지를 몇 가지 정리해 주셨습니다. 하나 하나 언급할 때마다 평생의 사역과 헌신, 지난 수년 동안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거친 고난의 종의 모습이 배어 나왔습니다.
자신의 메시지를 중량감 있게 설명하시고는 물으셨습니다. "장 목사는 평생 전할 메시지가 있나?" "예, 있습니다. 그런 메시지가 없이 뒤 늦게 목회를 하겠다고 뛰어 들기 어렵죠." "그게 뭔데?" "말씀 안 드릴 겁니다." "왜?" "제가 전하는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인지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말해 줘야지 설교한 사람이 자기 주제를 말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죽은 다음에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 지 봐야죠." 그것도 말이 된다고 하시면서 크게 허허 웃으셨습니다.
우리 시대에 한국 교회의 존경 받는 어른과 이런 일로 저런 관계로 엮여서 지내 왔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개인적인 추억과 복음의 열정을 나눈 추억이 남아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약함을 축복으로 여기시고 찬양에서 말씀까지, 큐티 교재에서 위성 방송까지, 일본에서 이스라엘까지 사역과 선교의 비전을 펼치셨던 목사님께 다시 한번 사랑과 존경을 부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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