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2008년 대침체이후 회복의 기미를 보이더니 금년에 들어와서 다시 침체에 빠져 들어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특히 선진국을 위시하여 정치계와 경제계에 팽배해 있습니다.
미국뉴욕증시의 다우죤스지수가 8월 4일 하루사이에 500이상 폭락한 것이 이를 중명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경우 작년만해도 성장률이 3%-4%로 웃돌더니 금년 들어 1분기 0.4%, 2분기 1.3%로 크게 줄어 들었고 실업률은 9.1%로 일자리를 찾는 아우성이 요란합니다.
일본경제는 최근 계속 -1%, -3%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아직도 1990년대 시작된 장기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경제의 경우 1%-3%의 저성장을 유지하고 있지만은 실업률은 2자리수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어서 국민경제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경제수치의 암울한 통계보다, 세계경제의 앞날을 중장기적인으로 내다 볼 때 더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선진경제들이 오랜 세월동안 쌓아 온 국가부채의 부담이 각 선진경제들의 경제발전에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 8월 2일 공화당과 민주당의 극적인 막판타결로 국가부도를 겨우 면한 미국의 국가부채는 미국경제규모의 100%가 넘는 14조3천억달라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도 많은 국가들의 경제가 국가부채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등 소규모경제들이 국가부도긴급구조에 들어 갔는데, 최근에는 유럽연합의 큰 경제들도, 예를 들면 이태리와 스패인의 경제도 국가부채로 국민경제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경제규모에 대비하여 국가부채가 그리스, 아이랜드, 포르투갈의 경우 각각 142.8%, 96.2%, 93.0%이고, 유럽연합의 제3대 경제인 이태리의 국가부채는 119.0%에 달하고 있어서 국가부도의 위험이 유럽연합 경제계를 강타하고 있는 소식이 계속 들려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체제하에서 어느 정도 풍요로운 번영을 누려 온 소위 선진경제들이 어떻게 나라살림을 살아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난 국가부채의 짐덩어리에 억눌리어 국민경제들이 주눅을 피지 못하고 있는 현실앞에서 바울사도의 독백과 권유를 묵상합니다.
“....우리가 빚진 자로되....”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개개인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인 회사나 사회나 국가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의역하면 인간 개개인이 모두 빚진 자인 것을 말할 것도 없고 단체나 사회나 국가도 빚진 자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빚진 자의 삶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반드시 악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물질적이든 물질적이 아니든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 육신적인, 인간적인, 세상적인 삶을 살아 가게 되면, 빚에 억눌리고 파묻히게 되어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빚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육적인 삶을 버리고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 즉 영적인 삶이란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이나”라고.
더 나아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라고.
즉 ‘영적인 삶’이란 바로 ‘의의 삶’, ‘하나님의 아들/후사로서의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일상생활의 99%이상을 차지하는 경제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후사로서의 삶이란, 의의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후사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Holiness)과 '의"(Justice)와 ‘사랑(Love)’입니다.
경제생활에 있어서 거룩한 삶이란 동기가 깨끗하고(Purity), 책임감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Accountability). 의로운 경제행위란 원인없이 결과를 바라지 말아야 하고(Merit, Deserve), 좋은 경제행위에는 보상이 따라 옵니다(Compensation). 경제적인 삶에서 사랑이란 나를 포함한 공동체의 유익을 추구하여야 하고(Others-Oriented), 필요에 따라 희생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Self-Sacrifice).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로서, 그에 합당한 경제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이 3가지 하나님의 성품이 모두 경제생활에 있어서 복합적이고 균형적으로 들어 나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한가지 성품만 들어 나서는 올바른 하나님의 자녀/후사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와 사랑이 없는 거룩이란 너무나 딱딱한 법치주의에 빠지기 쉽고, 거룩과 사랑이 없는 의란 지나치게 냉혹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거룩이나 의가 없는 사랑이란 싸구려 감상주의로 흘러 버리거나 비도덕저인 결과를 초래하기 쉽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나 회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로서,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과 의와 사랑을 각자의 경제생활에서 실천해 나아 갔었다고 할 것같으면, 세계경제들을 심각한 침체로 몰아 놓고 있는 지나친 국가부채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빠져 들어 간 과도한 국가부채에서 벗어나는 해결방안도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후사로서의 경제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빠른 첩경일 것입니다.
백 순 칼럼니스트
(미국노동성선임경제학자, 와싱톤중앙장로교회원로장로, 워싱톤침례대학교교수)
미국뉴욕증시의 다우죤스지수가 8월 4일 하루사이에 500이상 폭락한 것이 이를 중명하고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경우 작년만해도 성장률이 3%-4%로 웃돌더니 금년 들어 1분기 0.4%, 2분기 1.3%로 크게 줄어 들었고 실업률은 9.1%로 일자리를 찾는 아우성이 요란합니다.
일본경제는 최근 계속 -1%, -3%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아직도 1990년대 시작된 장기 침체의 늪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경제의 경우 1%-3%의 저성장을 유지하고 있지만은 실업률은 2자리수를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어서 국민경제발전에 발목을 잡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경제수치의 암울한 통계보다, 세계경제의 앞날을 중장기적인으로 내다 볼 때 더 암울하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선진경제들이 오랜 세월동안 쌓아 온 국가부채의 부담이 각 선진경제들의 경제발전에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현실입니다.
지난 8월 2일 공화당과 민주당의 극적인 막판타결로 국가부도를 겨우 면한 미국의 국가부채는 미국경제규모의 100%가 넘는 14조3천억달라를 상회하고 있습니다.
유럽연합도 많은 국가들의 경제가 국가부채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얼마전에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등 소규모경제들이 국가부도긴급구조에 들어 갔는데, 최근에는 유럽연합의 큰 경제들도, 예를 들면 이태리와 스패인의 경제도 국가부채로 국민경제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국가경제규모에 대비하여 국가부채가 그리스, 아이랜드, 포르투갈의 경우 각각 142.8%, 96.2%, 93.0%이고, 유럽연합의 제3대 경제인 이태리의 국가부채는 119.0%에 달하고 있어서 국가부도의 위험이 유럽연합 경제계를 강타하고 있는 소식이 계속 들려 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체제하에서 어느 정도 풍요로운 번영을 누려 온 소위 선진경제들이 어떻게 나라살림을 살아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난 국가부채의 짐덩어리에 억눌리어 국민경제들이 주눅을 피지 못하고 있는 현실앞에서 바울사도의 독백과 권유를 묵상합니다.
“....우리가 빚진 자로되....”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개개인을 지칭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인 회사나 사회나 국가를 나타낼 수도 있습니다. 다시 의역하면 인간 개개인이 모두 빚진 자인 것을 말할 것도 없고 단체나 사회나 국가도 빚진 자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빚진 자의 삶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반드시 악한 일을 하지 아니하고 악한 생각을 품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물질적이든 물질적이 아니든 번영과 행복을 추구하는 육신적인, 인간적인, 세상적인 삶을 살아 가게 되면, 빚에 억눌리고 파묻히게 되어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빚에서 벗어나고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육적인 삶을 버리고 영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는” 삶, 즉 영적인 삶이란 어떠한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바울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이나”라고.
더 나아가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은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라고.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라고.
즉 ‘영적인 삶’이란 바로 ‘의의 삶’, ‘하나님의 아들/후사로서의 삶’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 일상생활의 99%이상을 차지하는 경제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후사로서의 삶이란, 의의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후사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을 닮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거룩’(Holiness)과 '의"(Justice)와 ‘사랑(Love)’입니다.
경제생활에 있어서 거룩한 삶이란 동기가 깨끗하고(Purity), 책임감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Accountability). 의로운 경제행위란 원인없이 결과를 바라지 말아야 하고(Merit, Deserve), 좋은 경제행위에는 보상이 따라 옵니다(Compensation). 경제적인 삶에서 사랑이란 나를 포함한 공동체의 유익을 추구하여야 하고(Others-Oriented), 필요에 따라 희생을 감수할 줄 알아야 합니다(Self-Sacrifice).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로서, 그에 합당한 경제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이 3가지 하나님의 성품이 모두 경제생활에 있어서 복합적이고 균형적으로 들어 나야 한다는 원리입니다. 한가지 성품만 들어 나서는 올바른 하나님의 자녀/후사의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의와 사랑이 없는 거룩이란 너무나 딱딱한 법치주의에 빠지기 쉽고, 거룩과 사랑이 없는 의란 지나치게 냉혹한 결과를 초래하기 십상입니다. 그리고 거룩이나 의가 없는 사랑이란 싸구려 감상주의로 흘러 버리거나 비도덕저인 결과를 초래하기 쉽게 됩니다.
개인적으로나 회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로서, 하나님의 성품인 거룩과 의와 사랑을 각자의 경제생활에서 실천해 나아 갔었다고 할 것같으면, 세계경제들을 심각한 침체로 몰아 놓고 있는 지나친 국가부채의 소용돌이속으로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단 빠져 들어 간 과도한 국가부채에서 벗어나는 해결방안도 하나님의 자녀/하나님의 후사로서의 경제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이 가장 빠른 첩경일 것입니다.
백 순 칼럼니스트
(미국노동성선임경제학자, 와싱톤중앙장로교회원로장로, 워싱톤침례대학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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