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존 스토트(Stott) 목사의 소천 소식에 애도를 표하고 있다. 많은 글과 설교를 통해 20세기 복음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스토트 목사는 노환으로 인한 지난 몇 주간의 투병 끝에 27일 오후 3시 15분(현지 시각) 결국 삶을 마감했다. 향년 90세였다.
스토트 목사는 86세 때인 2007년 사역에서 물러난 후, 영국 성공회가 은퇴 지도자를 위해 마련한 잉글랜드 링필드 성바나바 대학 내 사택에 머물러 왔다. 스토트 목사의 임종은 그의 오랜 비서와 가까운 지인들이 지켰다. 그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사역에 어려움이 있을 것을 감안해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스토트 목사의 소천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스토트 목사에게서 받은 영향과 그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복음주의권의 큰 별이었던 스토트 목사는 또한 많은 이들을 멘토로서 섬겨 왔으며 이에 ‘엉클 존(Uncle John)’이란 친밀한 호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성명을 통해 “복음주의 세계는 가장 위대한 대변인 중 한 명을 잃었다”고 밝혔다. 이어 “나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조언자 중 한 명을 잃었으며 천국에 갔을 때 그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그래함 목사와 스토트 목사는 특히 복음주의 세계 선교 운동의 흐름을 바꿔놓은 로잔회의(1974)를 함께 주도했으며, 스토트 목사의 가장 잘 알려진 업적 중 하나도 로잔언약 초안 작성이다.
이처럼 오랜 친구이자 동료의 소식에 그래함 목사는 소식을 듣고 잠시 할 말을 잃고 눈물을 흘렸다고 그래함 목사의 가족들은 전했다.
세계복음연맹(WEA) 제프 터니클리프 대표도 스토트 목사에게서 받은 지대한 영향에 대해 밝히며 특별한 애도를 표했다. 스토트 목사는 1951년 작성된 WEA 헌장 서문 작성자이기도 하다. 터니클리프 대표는 “‘엉클 존’은 내 신학적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 성경적 진리와 세계 선교 그리고 교회의 연합에 대한 그의 헌신은 내 영적 여정의 근간을 제공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로잔운동(Lausanne Movement) 더글러스 버드셀 의장과 린지 브라운 국제 디렉터도 공동 성명에서 “우리는 그의 떠남에 슬퍼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의 긍지와 희망, 그리고 그 평생의 업적을 통해 힘을 받는다”고 전했다.
이들은 “스토트 목사는 복음주의 신앙의 수호에 위대한 기여를 했으며, 그는 복음주의 신앙이란 성경적 신앙임을 언제나 믿었다”고도 밝혔다.
스토트 목사가 설립했으며, 복음주의 목회자들에 대한 교육, 훈련, 문서 운동을 진행하고 있는 랭햄 파트너십 인터내셔널(Langham Partnership International)과 그 미국 지부인 존 스토트 미니스트리즈(John Stott Ministries)의 대표 크리스 라이트 박사 역시 성명을 내고, “그는 모세처럼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 주신 위대한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 그를 아는 모든 이들에게 그는 예수님의 사랑의 전형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스토트 목사의 사역을 계승했다고 평가 받는 라이트 박사는 작년 개최된 제3차 로잔대회에서 나온 케이프타운 조약(The Cape Town Commitment)의 초안 작성자이기도 하다.
한편, 이외에도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스토트 목사의 소천 소식에 애도를 전하고 있다. 미국 새들백교회 릭 워렌 목사는 “나의 멘토인 존 스토트 목사가 돌아가셨다”고 알리며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스토트 목사와 새들백교회에서 공동 설교를 했던 일을 떠올리기도 했다.
남침례신학교 R. 앨버트 몰러 Jr. 총장은 “존 스토트 목사 없이 20세기 복음전도를 논할 수 없을 것이다”고 평가했으며, 또한 “그는 관대하고 섬세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그와 내게 준 따뜻한 추억들에 감사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