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워싱턴주 기념사업회(회장 주완식 목사)는 지난 19일 워싱턴주 훼드럴웨이 소재 주님을 향한 교회(담임 김요한 목사)에서 우남 이승만 박사 서거 46주기 추모식을 거행하고, 고 이승만 박사의 애국 업적을 기렸다.

추모식은 기념사업회 총무 정병국 장로의 사회로 나균용 목사가 추모기도를 했으며, 워싱턴주 음악인협회 김경자 회장이 특송했다. 이어서 황기현 부회장의 이승만 박사 양력보고, 주완식 목사가 추모사를 독했으며, 정창인 박사가 이승만 박사의 영상을 소개하며 건국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설명했다.

주완식 목사는 추모사에서 ‘이승만 박사의 업적이 폄하되고 있음’에 안타까워하면서, “이승만 박사는 민주주의에 대한 굳은 신념과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하며 대한민국의 건국과 발전에 토대를 마련했다"고 역설했다.

주 목사는 “이승만은 구한말부터 계몽운동과 독립운동을 추진했던 정치인 이전에 독립 운동가였다”면서 1차 대전 이후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 요청, 미소 양국의 냉전 상황에서 신탁통치를 강력히 반대, 대한민국의 자주권 확보, 6.25 동란 시 탁월한 외교력으로 대한민국 수호 등의 업적을 발표했다.

영상으로 이승만 박사의 육성을 전한 정창인 박사는 “친북 세력에 의해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 경력이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은폐되고 있지만 진실이 알려져 이승만 박사의 애국 업적이 높이 평가돼야 한다”며 “대한민국의 위기 때마다 구국에 힘썼던 이승만 박사의 업적은 재평가 돼야 하고, 더 나아가 건국 대통령으로서의 업적을 기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서북미 지역 원로였던 고 김병섭 장로와 김정일 목사, 여경호 장로등의 노력으로 1999년 2월 창립된 워싱턴주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는 미주 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창립된 것으로 이후 미주 8개 지부로 확대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워싱턴주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는 창립회장으로는 초대 이동립 의학박사, 2대 박영희 원로목사, 3대 황기택 원로목사, 현 4대 주완식 목사가 이끌고 있다.

이승만 박사의 약력

1875년 4월 18일 황해도 평산 출생 1895년 배재학당 졸업 1896년 협성회·독립협회 간부 1898년 독립협회 사건 당시 정부타도획책 혐의로 투옥, 종신형 선고받음, 5년 7개월 옥고 1904년 석방, 도미 1907년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수학 1910년 하버드대 석사와 프린스턴대 국제정치학 박사 모든 과정을 4년 반 만에 마침 1912년 세계감리교대회 한국대표 1914년 하와이에서 주보 `태평양` 발간 1917년 호놀룰루에 기독교 학원 독립군관 학교 설립 1919년 상해 임시정부 대통령 취임 1921년 상해임시정부 배척으로 사임 미국에서 독자적 독립운동 1945년 귀국, 독립촉성중앙협의회 총재 민주 의원 의장 1948년 제헌 국회의장, 초대 대통령 취임 1949년 농지개혁 실시 1950년 6.25사변 발발 1951년 자유당 창당 총재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무조건 석방 용단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 체결 1952년 제2대 대통령 1956년 제3대 대통령 1960년 대통령 선거 당선 1960년 4.19 하야, 하와이 망명 1965년 7월19일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양자 이인수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향년 91세로 하와이 ‘마우나라니’병원에서 서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