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서리대학의 수면전문가인 닐 스텐리 박사는 배우자가 코를 심하게 골거나 잠을 자면서 이불을 끌어당기어 수면 장애를 일으키면 “부부가 침대를 따로 써야 건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것을 주장하는 것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우울증은 물론 심장병, 뇌졸증, 호흡장애, 교통사고, 산재사고 심하면 이혼등과 같은 연관성을 가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간혹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에 걸린 환자의 배우자가 잠을 자면서 코를 심하게 골거나 무호흡증으로 숙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된다면 환자로 하여금 다른 방을 사용하도록 권면을 한다. 그런데 그것은 근본적인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책이 아니라 더 이상 그것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방지하는 차원의 것이지 근본적인 우울증의 치유책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우울증의 치료를 가족과 부부(夫婦)의 관계형성에서 찾아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의 치료법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않된다. “가족이 건강하면 사회가 건강하다”는 말처럼 건강한 가족에게는 우울증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가족’을 좀더 친밀한 의미로 본다면 그것은 ‘식구’(食口)라고 표현 할 수 있는데 그 의미는 ‘한 집에서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한 식구가 밥상에 둘러앉아 각기 제 숫가락을 들고 보글보글 끓는 맛있는 된장찌게에 집어 넣었다 뺏다해도 누구하나 인상을 찌부리지 아니하고 즐겁게 먹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의 끈끈한 사랑 때문이다. 이러한 ‘식구의 모습’을 가진 가정이라면 서로의 존재에 대해 필요성과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데 사랑의 부부관계는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워야 하고 부부 사이에 “사랑의 벽”을 만들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한다. 속담에 ‘부부 싸움을 해도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 ‘잠자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남편이 코를 심하게 골아도 그것이 나에게는 자장가로 들린다’는 생각을 가지고 부부의 삶을 살아간다면 잠을 자면서 부부가 서로 다리가 얽히고 살을 비비고 뒤척거리면서 이불을 잡아당기어도 그것이 전혀 잠을 자는데 방해가되지 않을 뿐더러 그것 때문에 배우자가 우울증이 생길수 없다고 믿는다. 사람마다 잠자는 모습의 유형이 각기 다른 신체적 그리고 유전적인 원인때문에 어떤 사람은 바르게 자야 하고 어떤 사람은 좌,우를 향하여 보고자야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다. 사랑하는 부부는 배우자가 잠을 자면서 이불을 걷어내어도 코를 골아도 등을 좌,우로 돌리고 잠을 자도 행복할 수 있고 오히려 배우자와 떨어져 잠을 자게되면 깊은 수면에 빠질 수 없을 것이라 여긴다. 중년이 될 수록 부부간의 친밀감은 더해 가야 하고 많은 대화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사랑의 체온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 열왕기상 1:1-2절을 보면 다윗의 노년의 모습을 그려 놓았는데 “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주 왕으로 따뜻하게 하리이다” 고 권면을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나이가 너무나 들었다 생각하여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기를 거부한다. 다윗왕이 ‘이불을 덮어도 따뜻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볼때 몸의 체온이 나이가 들어 내려갔기 때문이다. 현대 의학계에서 사람의 질병의 치료를 위해 수술대신 온열요법으로 치유하려고 나이에 따라 사람들의 체온을 제어 보았는데 아기가 처음 엄마의 뱃속에서 나올때 체온은 섭씨 37도 가량이고 나이가 들면 차츰 사람의 정상 체온이 36.5도로 되고 노인이 되면 36도쯤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체온이 1도 올라가면 몸의 병원균을 이길수 있는 면역력이 5배로 증가하게 된다. 이와 반대로 사람의 체온이 35도로 떨어지면 면역성이 급격히 약화되기 때문에 생명에 위험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특별히 사람의 몸의 온도가 35도가 되면 암세포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기 때문에 몸의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꼭 방지해야 하는 것이다. 부부가 돈 안들이고 체온을 1도 올려 면역력을 5배이상 증가시켜 암을 방지하고 서로가 건강할 수 있는 것은 각자 각방을 쓰지 아니하고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사람들이 몸의 체온의 유지를 위해 잠자리에 전기매트, 돌침대, 황토찜질매트, 옥매트, 원적외선방출을 사용하지만 사람의 피부의 온도인 33,9도의 온도를 올리는 피부만 따뜻하게 할 뿐이지 근본적인 몸의 오장 육부의 온도를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돈을 사용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면서 몸과 마음의 정상체온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부부가 사랑하면서 한이불 아래 같이 자는 것이다. 한 이불에서 부부가 잠을 자는 것은 늘 행복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가 슬프고 괴로워 할때 함께 아픔의 짐을 나누어 질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고독과 외로움의 눈물까지도 닦아 줄 수 있는 ‘축복의 장(場)’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행복과 더불어 영적인 건강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면 “하나님과 영적인 사랑의 체온의 관계형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캐더린 짐러의 글 ‘모래위에 발자국’ 에 보면 어느 한 사람이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는 꿈을 꾸게 되는데 지나온 인생이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걸어온 모래위에 발자국을 바라 보았는데 두 사람의 발자국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겨져 주님에게 묻기를 “주님 어찌하여 내가 주님이 필요할 때마다 주님은 어디 계셨습니까?” 라고 묻자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네가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때 나는 한번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느니라.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 밖에 볼 수 없었던 바로 그때는 내가 너를 나의 등에 업고 가던 때였느니라.” 이러한 따뜻한 주님의 등이 없었다면 그 사람이 지치고 힘들어 그 고통이 너무나 커서 살아갈 수 없었기에 주님께서 그렇게 사랑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이 주신 영으로 사는 사람들이기에 영적인 주님과의 사랑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주님과 영적인 사랑의 뜨거움의 열정이 식어지면 영혼이 병들어가게 된다. 영혼이 건강하려 한다면 “부부의 사랑의 관계형성 뿐 아니라 주님과의 영적인 사랑의 체온”을 온전히 이루며 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