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은 왜 생각해야 하는가?”는 질문에 복음주의 목회자 존 파이퍼가 답했다, 아니 호소한다. <존 파이퍼의 생각하라(Think: The Life of the Mind and the Love of God)>에서 그는 ‘하나님과 이웃을 더 깊이 사랑하기 위한 성경적 사고법’을 제시한다.
그의 ‘간절한 호소’는 머리와 가슴, 생각과 느낌, 이성과 신앙, 신학과 찬양, 정신노동과 사랑의 섬김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라는 데서 출발한다. ‘생각’이 하나님을 아는 데 필수적이며,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보라는 것이다. 그는 “생각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세상을 향한 섬김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중요한 방법”이라고도 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성’을 주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에서, 모든 것보다 그분을 소중히 여길 모든 이유를 찾고 마침내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사람들을 섬기라고 주신 ‘수단’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썼지만, 과도한 지성주의는 반(反)지성주의와 다를 바 없는 ‘전염병’임을 상기시킨다.
파이퍼는 그리스도인의 ‘생각’을 방해하는 여러 ‘생각’들을 제거하는 데 집중한다. ‘믿음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상대적 지식’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주의’의 일곱가지 폐해를 지적한다. 특히 반지성주의의 무익한 충동에 주목하고, 성경의 두 구절을 다루면서 논의를 진전시킨다.
예수와 바울이 말한 이 두 구절은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눅 10:21)”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전 1:20)”다.
언뜻 보면 반지성주의를 장려하는 듯한 이 두 구절에 대해 파이퍼는 “하나님을 힘써 알려는 우리에게 세밀하게, 성실하게, 엄밀하게, 일관되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과 바울이 두 경고를 제시하는 방법을 유심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 이유는 “마음에 은혜가 깊이 역사하지 않으면 생각이 거드름을 피우고, 은혜가 역사하면 생각은 겸손한 지식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이란, 위험하지만 필수적인 행위가 된다.
존 파이퍼는 결국 “단지 성경 연구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연구하는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실체를 연구하고, 그 실체에 대해 정확히 말하고 쓰며, 그 실체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그 실체를 활용해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결론내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동떨어진 채 학문을 한다면 더는 학문을 하는 게 아니다. 우주 만물은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계획으로 생겨났으며, 그분의 다양한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들로 그 영광을 사랑하게 하려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연구한다면, 이는 학문이 아닌 반란이라고까지 그는 강조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생각하기’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다음 다섯가지를 호소한다. 첫째, 생각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라. 지성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일에 삶을 바친 사람들 덕분에 영적·육적으로 유익을 누리게 됐다. 둘째, 생각으로 당신을 섬기는 이들을 존경하라. 자신의 성향 및 소명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려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셋째, 넘어지기 쉬운 생각을 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지적인 지도자들이 성경을 등지고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일이 허다하다. 넷째, 잘못된 생각을 피하라. 성경을 대할 때나 가르치는 이들을 대할 때 최악의 실수를 피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기쁘게 성경을 읽어라.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에서 찾아낸 진리는 당신의 삶이 된다.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네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라.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영광에 담긴 더없는 가치를 드러내려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에 고정시켜야 한다. 둘째, 어린아이들처럼 되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자신을 겸손히 낮춰야 한다. 셋째, 하나님 말씀을 금과 꿀처럼 기뻐하라. 생각하기 힘들 때도 있겠지만, 무엇을 생각하든 보화이신 하나님을 보고 또 맛보려 노력해야 한다. 넷째, 사랑을 위해 생각하라. 모든 생각이 이웃 사랑의 실천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하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생각하기는 은혜의 선물이며, 점점 더 많은 것에 이르는 길이다.”
그의 ‘간절한 호소’는 머리와 가슴, 생각과 느낌, 이성과 신앙, 신학과 찬양, 정신노동과 사랑의 섬김을 양자택일의 문제로 생각하지 말라는 데서 출발한다. ‘생각’이 하나님을 아는 데 필수적이며, ‘생각하는 것’을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보라는 것이다. 그는 “생각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세상을 향한 섬김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는 중요한 방법”이라고도 한다.
물론 그가 말하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성’을 주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것에서, 모든 것보다 그분을 소중히 여길 모든 이유를 찾고 마침내 발견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는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며 사람들을 섬기라고 주신 ‘수단’을 우리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썼지만, 과도한 지성주의는 반(反)지성주의와 다를 바 없는 ‘전염병’임을 상기시킨다.
파이퍼는 그리스도인의 ‘생각’을 방해하는 여러 ‘생각’들을 제거하는 데 집중한다. ‘믿음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 논하고, ‘상대적 지식’이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주의’의 일곱가지 폐해를 지적한다. 특히 반지성주의의 무익한 충동에 주목하고, 성경의 두 구절을 다루면서 논의를 진전시킨다.
예수와 바울이 말한 이 두 구절은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눅 10:21)”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고전 1:20)”다.
언뜻 보면 반지성주의를 장려하는 듯한 이 두 구절에 대해 파이퍼는 “하나님을 힘써 알려는 우리에게 세밀하게, 성실하게, 엄밀하게, 일관되게 생각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니”며, “예수님과 바울이 두 경고를 제시하는 방법을 유심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 이유는 “마음에 은혜가 깊이 역사하지 않으면 생각이 거드름을 피우고, 은혜가 역사하면 생각은 겸손한 지식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생각이란, 위험하지만 필수적인 행위가 된다.
존 파이퍼는 결국 “단지 성경 연구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연구하는 모든 학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실체를 연구하고, 그 실체에 대해 정확히 말하고 쓰며, 그 실체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맛보고, 그 실체를 활용해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결론내린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동떨어진 채 학문을 한다면 더는 학문을 하는 게 아니다. 우주 만물은 무한하고 인격적인 하나님의 계획으로 생겨났으며, 그분의 다양한 영광을 드러내고 사람들로 그 영광을 사랑하게 하려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에서든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고 연구한다면, 이는 학문이 아닌 반란이라고까지 그는 강조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생각하기’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다음 다섯가지를 호소한다. 첫째, 생각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라. 지성을 엄밀하게 사용하는 일에 삶을 바친 사람들 덕분에 영적·육적으로 유익을 누리게 됐다. 둘째, 생각으로 당신을 섬기는 이들을 존경하라. 자신의 성향 및 소명에 따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해하려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셋째, 넘어지기 쉬운 생각을 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 지적인 지도자들이 성경을 등지고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일이 허다하다. 넷째, 잘못된 생각을 피하라. 성경을 대할 때나 가르치는 이들을 대할 때 최악의 실수를 피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기쁘게 성경을 읽어라.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에서 찾아낸 진리는 당신의 삶이 된다.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네 가지를 당부한다. 첫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의식적으로 생각하라. 모든 생각은 하나님의 영광에 담긴 더없는 가치를 드러내려는 하나님의 궁극적 목적에 고정시켜야 한다. 둘째, 어린아이들처럼 되라.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 자신을 겸손히 낮춰야 한다. 셋째, 하나님 말씀을 금과 꿀처럼 기뻐하라. 생각하기 힘들 때도 있겠지만, 무엇을 생각하든 보화이신 하나님을 보고 또 맛보려 노력해야 한다. 넷째, 사랑을 위해 생각하라. 모든 생각이 이웃 사랑의 실천이 되게 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하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생각하기는 은혜의 선물이며, 점점 더 많은 것에 이르는 길이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