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붉은 기둥에의 歷史 흐름에다가
지난날 偉容과 화려함에도
희비애락의 정수를 타고 내려 온 그림자를 감추고
상처투성이 종교전쟁의 연륜이 더께로 덥혔구나.
어마어마한 축조물의 압도(壓倒)가
둘러 선 숱한 내부 거창한 돔(dome) 밑으로의
창문이 오히려 작아 보여서
헝클어진 정면이
생채기로 삐뚤어져 버렸네.
앞 향해 서야 할지,
고개만 옆으로 돌리면서
지나 온 그 아픈 흔적을 본다.
높은 돔(dome)은 어떻게 저렇게 올렸을까
인간의 손길이었고 지혜였을 텐데..
대형 회랑 한 곁으로 놓인 항아리 앞에서
보석으로 정면으로 대하고
기독교를 덮친 회교의 攻防은
우리의 현실 흠집 과 하늘 영의 싸움이어서
우뚝 서 있는 진실은
바울의 외친 지혜로
그 날까지 흐를 것일 터,
내부 난간 위층으로 올라 서 서
프레스코 벽화의 금 칠 흔적 歷史를 안고서
거기 발 앞에 채 이는 돌덩이 하나
왜 조심 없이 나굴러 떨어져 있는 것일까
여인은 앞쪽에 나서지 못한다는 규범 아래서
대영제국의 여황도 뒤 녘에 머물러서야 했다는 표식으로
나 둥그러져 있는 돌 하나
의미를 담고서 발치에 뒹굴어져 있구나.
건물 초대형 내부 한 곁으로
비스듬히, 사. 오층 높이로 돌 작 밭같이
비탈 통로였다는데
馬車들이 줄 서 내려, 올라갔다는 지하 도로를
귀한 순례자처럼 나도
두어 차례 오르내리면서
스쳐가는 思念에 젖어
무겁게 고개 내린다.
비잔틴의 5세기 초반, 손 자죽으로
흐린 古香은 왜
내 가슴 속에서 아스라한 이끼처럼
내려 가라앉으나?
인간의 질고는 여전히
순간의 기쁨들 함께
끊임없이 아픈 숨결로
이어져 흘러 내려가고 있을 것일 터..
<소피아교회당에 대한 역자 설명>
대 여섯 번의 훼파(毁破)의 거듭함을 무릅쓰면서, 이 거대한 The Church of St. Sophia 교회당은 실제로는 5세기에 Theodosius II세에 의해서 <신성한 지혜-라는 Hagia Sophia>에서 이름을 가지게 된 건물로 처음 축조 되었었으나 그 후 회교사원으로, 또 다시 Constantine 대제 때에 Sophia 교회당으로 다시 재 축조, 재 명명 되었다가 다시 또 회교사원으로 바뀌어지고 또 화재로 쓰라린 역사의 아픔을 계속적으로 거친 교회당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회랑 안 바닥에 우둑하니서서, 나는 왜 느닷없이 거기에서 내 그림자가 드리워졌는지, 나 자신도 모르게, 휑하니 잠시 멈춰 서 있었습니다. 나의 생애 뒤 안쪽에 그려 진 평탄치 못한 어린 시절을 거처 간 내 그림자에다가, 2차 대전 말기의 어린 시절의 가족 떨어진 피난생활, 6.25의 붉은 손에 빼앗긴 서울거리 파괴 된 길바닥에서, 1.4후퇴. 서울수복등 거처 간 그림자를 되돌아보면서 감히 쏘피아교회당 대형기둥 아래, 회한의 그림자를 드리워 보았습니다. 다행한 일이기는 해도, 깊은 상처의 골마다 패어지는 연륜의 특이한 개인적 지혜가 또 그만큼 화려한 나이테처럼 덥혀져 간다는 이치 같은 것을 막연히 배워 가는 것이었습니다.
지난날 偉容과 화려함에도
희비애락의 정수를 타고 내려 온 그림자를 감추고
상처투성이 종교전쟁의 연륜이 더께로 덥혔구나.
어마어마한 축조물의 압도(壓倒)가
둘러 선 숱한 내부 거창한 돔(dome) 밑으로의
창문이 오히려 작아 보여서
헝클어진 정면이
생채기로 삐뚤어져 버렸네.
앞 향해 서야 할지,
고개만 옆으로 돌리면서
지나 온 그 아픈 흔적을 본다.
높은 돔(dome)은 어떻게 저렇게 올렸을까
인간의 손길이었고 지혜였을 텐데..
대형 회랑 한 곁으로 놓인 항아리 앞에서
보석으로 정면으로 대하고
기독교를 덮친 회교의 攻防은
우리의 현실 흠집 과 하늘 영의 싸움이어서
우뚝 서 있는 진실은
바울의 외친 지혜로
그 날까지 흐를 것일 터,
내부 난간 위층으로 올라 서 서
프레스코 벽화의 금 칠 흔적 歷史를 안고서
거기 발 앞에 채 이는 돌덩이 하나
왜 조심 없이 나굴러 떨어져 있는 것일까
여인은 앞쪽에 나서지 못한다는 규범 아래서
대영제국의 여황도 뒤 녘에 머물러서야 했다는 표식으로
나 둥그러져 있는 돌 하나
의미를 담고서 발치에 뒹굴어져 있구나.
건물 초대형 내부 한 곁으로
비스듬히, 사. 오층 높이로 돌 작 밭같이
비탈 통로였다는데
馬車들이 줄 서 내려, 올라갔다는 지하 도로를
귀한 순례자처럼 나도
두어 차례 오르내리면서
스쳐가는 思念에 젖어
무겁게 고개 내린다.
비잔틴의 5세기 초반, 손 자죽으로
흐린 古香은 왜
내 가슴 속에서 아스라한 이끼처럼
내려 가라앉으나?
인간의 질고는 여전히
순간의 기쁨들 함께
끊임없이 아픈 숨결로
이어져 흘러 내려가고 있을 것일 터..
<소피아교회당에 대한 역자 설명>
대 여섯 번의 훼파(毁破)의 거듭함을 무릅쓰면서, 이 거대한 The Church of St. Sophia 교회당은 실제로는 5세기에 Theodosius II세에 의해서 <신성한 지혜-라는 Hagia Sophia>에서 이름을 가지게 된 건물로 처음 축조 되었었으나 그 후 회교사원으로, 또 다시 Constantine 대제 때에 Sophia 교회당으로 다시 재 축조, 재 명명 되었다가 다시 또 회교사원으로 바뀌어지고 또 화재로 쓰라린 역사의 아픔을 계속적으로 거친 교회당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회랑 안 바닥에 우둑하니서서, 나는 왜 느닷없이 거기에서 내 그림자가 드리워졌는지, 나 자신도 모르게, 휑하니 잠시 멈춰 서 있었습니다. 나의 생애 뒤 안쪽에 그려 진 평탄치 못한 어린 시절을 거처 간 내 그림자에다가, 2차 대전 말기의 어린 시절의 가족 떨어진 피난생활, 6.25의 붉은 손에 빼앗긴 서울거리 파괴 된 길바닥에서, 1.4후퇴. 서울수복등 거처 간 그림자를 되돌아보면서 감히 쏘피아교회당 대형기둥 아래, 회한의 그림자를 드리워 보았습니다. 다행한 일이기는 해도, 깊은 상처의 골마다 패어지는 연륜의 특이한 개인적 지혜가 또 그만큼 화려한 나이테처럼 덥혀져 간다는 이치 같은 것을 막연히 배워 가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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