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갈수록 아프리카의 생활엔 익숙해지고 사역도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처음엔 겨울을 기대하던 내 몸이 아프리카의 날씨에 부대끼어 많이 힘들어 했는데 차츰 적응하고, 아프리카 땅에만 기생하는 흙벌레가 발바닥을 뚫고 자리를 잡아 한동안 고생했는데 거의 다 나았다. 숙소의 전기불이 자주 나가지만 전기 없이 사는 집이 대부분인 이 땅에서 전기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며 전기가 나가더라도 촛불의 밤을 좋아하는 나에겐 그 일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터넷도 사용하다가 끊어질 때는 안쓰면 그만이고, 물도 미리 받아 두고 아껴서 쓰면 된다. 먹을 것도 미국에 있는 동역자가 보내준 밑반찬과 양념으로 부족함이 없다. 다만, 아프리카 사람들이 나의 생활수준 정도로만 살아준다면 나는 이 먼지 속에서도 아름다운 자연을 누리며 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날이 새면 마주쳐야 하는 맨발의 아이들과 배고픈 사람들, 그리고 병든 사람들, 특별히 주일날 이런 사람들을 앞에 두고 설교를 해야 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때론 더욱 간절한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지난 주엔 신양가에서 세미나 중에 변화되고 병 고침을 받은 사람들 때문에 정말 보람이 있었다.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만족하나보다. 돌아오는 길에 먹을 것이 없어서 거리에 버려진 바나나 껍질을 주워다가 삶아 먹는다는 나환자촌에 쌀100kg를 사서 가지고 갔다. 그걸로는 며칠을 견디지 못하는걸 알면서도 가진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한쪽 구석 흙바닥에 앉아 돌을 세워놓고 나무로 불을 지피고 있는 나환자들이 보였다. 바로 옆엔 조그마한 깡통에 피가 담겨져 있었고 깡통 주위에는 파리 떼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것을 끓여 먹기 위해 불을 지피는 중이라고 했다. 어디서 소피를 얻어온 모양이다. 그 중 한 사람은 한쪽 발이 상하여 종아리까지 문드러지고 무릎뼈가 보일 듯했고 다른 한 사람은 손과 발이 다 문드러지고 없었다.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는 형상의 나환자들이 우리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곳곳에서 기어 나왔다. 기어 나왔다는 표현이 미안하지만 걸을 수가 없는 그들은 정말 그랬다.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신양가의 시에서 거리를 헤매는 나환자들을 한곳에 모아 집을 지어 주긴 했지만 바닥은 마당이나 다를 바 없는 흙이었다. 물론 벽도 마찬가지로 흙으로 되어 있었다. 평소에 먹을 것이 없는 그들은 거리를 기어 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기도 하고 구걸한 것을 끓여 먹는다고 한다. 먹을 것이 턱없이 모자라는 이 땅에서 구걸이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가난하지만 몸이라도 건강하면 좀 나을 텐데...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그곳에 모인 환자들에게 힘주어 말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것이 우리의 삶의 끝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예수라는 분의 이름을 들어 본적이 있나요.? 만약에 우리가 이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살 찢기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리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분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천국을 축복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이 고난은 잠깐 후엔 분명히 끝이 납니다.”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끝까지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어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결국 목이 메어 끝을 맺지 못하고 함께 간 현지인 목사님에게 마무리를 하게 했다. 기도를 마친 후, 다시 오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왔다. 돌아오는 길엔 모두 침묵에 잠겼다. 과연 내가 저런 환경이라도 날 구속하신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 아니, 참을성 없는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풍족하게 살아오게 하신 것을 감사하며 그들에게도 이 땅에서 배고프지 않도록 기도하는 마음 간절했다. 오늘 100kg,- 60불 주고 산 쌀을 4일 동안 먹을 수 있다니 500불이면 이들의 양식을 대어 줄 수 있겠다. 고매섬에 사는 나환자 에스더의 가족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어 깨끗한 집을 지어 주님과 함께 잘 살아가게 하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도 같은 은혜를 베푸시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