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盡心章(진심장)”에 이런 글귀가 있다. “군자에게는 세가지 즐거움이 있는데,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간에 탈이 없는 것이 첫째 즐거움이요, 위로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며 아래로는 사람들에게 꺼리낌이 없는 것이 두번째 즐거움이요, 세번째로는 천하에 영재를 얻어서 교육하는 것이니, 천하에 왕노릇하는 것은 군자삼락에 포함되지 않는다.”
맹자가 설파한 군자의 즐거움은, 첫째 가정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둘째는 개인 양심의 떳떳함으로 인해 어디서든지 눈치 보지않고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즐거움, 마지막 세번째는 교육자로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여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제자의 성장을 바라보며 기쁨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출세하여 부귀 영화를 누리고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삶은 군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즐거움이 될 수 없음을 처음과 끝 두차례나 강조하였다.
맹자가 예수는 몰랐어도 하나님의 뜻만은 제대로 알았던듯 싶다. 가정에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곳에서 욕구를 채우려하는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가정으로부터의 행복을 느끼지 못할 때 다른 쾌락을 위해 찾아갈 곳은 도처에 널려 있기에 가정은 점점 파괴되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법.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도급 인사의 가정이 불안정 할 때에 사회 전반적으로 가정이 부실해질 것은 자명하다. 또한 남을 배려하는 차원도 아니면서 자신의 보신과 목적 추구를 위해서 바른말, 소신있는 행위를 하지 못하고, 조석으로 눈치만 살피는 무소신이 소신인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그들 앞에 머리 조아리는 힘없는 분들도, 그 처세술을 “나도”하며 배우면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나 하는 기우에서다.
오래 전에, 이름을 익히들어 알고있는 동부지역에 계신 원로 목사님께서 부흥회 인도를 위해 이곳 워싱턴에 오신다는 신문 광고를 접하였다. 그곳에 살 때 그분에게 받았던 화려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않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광고에 나타난 그 분의 이력을 세어보았다. 과거 18가지 직임에서 10가지 정도의 직임으로 줄었음을 보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시국 강연회 강사도 아니시고 말씀 사경회를 위해 먼길 오신 분 이력에 무슨 목사 경력에 없어도 될 경력, 아니 없으면 더 중량감 나가실 분에게 잡다한 이력들이 넘치는지…. 물론 사람에 따라 추구하고, 즐기고, 가치있다고 여겨 얻고자하는 바가 각기 다르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선적으로 자신의 직임에 맞는 절제된 경력과 그것에서 얻어진 풍성한 열매를 보여줌이 모든 사람의 신망을 받는 길이 아닌가 한다. 작고 부실한 볼품없는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보다는 열매의 수는 적지만 탐스럽고 먹음직한 과실이 달린 나무가 보기도 좋고 실속도 있기 때문이다. 헛된 명예와 영광의 추구는 자신을 오히려 초라하고 가볍게 만드는 법 아닌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막론하고 영적으로 현대판 군자라 할 수 있다. 절제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이 세상에서도 군자 소리 듣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갈고 닦고 연단받아 하늘나라에서 왕노릇 제대로 해야 될 몸들 아닌가? 이 세상에서의 왕노릇 높은 자리는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주시면 하는 것이지 온 힘다해 추구할 바는 아니며, 필경 높은 위치에 있다 하여도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통해 봉사하는 자세로 임해야 될 줄로 안다. 명예와 권력을 추구함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이기는 하나, 본능대로 살아가면서 군자의 호칭 성도의 자격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목사 안수 받은 후에, 석양 노을을 배경으로 빈배가 구석에 고요히 떠있는 사진이 들어간 흔한 액자를 하나 구해서 “虛舟(허주)”란 이름을 붙여 벽에 걸어두었다. 내나름의 虛舟에 담긴 뜻 즉 욕심부리지 않고, 무소유로 살며, 가르칠만한 인재를 내 배의 빈 공간 위에 태우고 함께 봉사의 길을 떠나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을 걸어둔 것이다. 명품 가정 (3세대 이상이 신앙생활 잘하고, 남에게 폐 조금만 끼치고, 능력 닿는대로 봉사하고, 제 밥벌이 스스로하면 명품가정 아닌가?)을 이루어 즐기고, 하고싶은 덕스러운 말 마음 편히 다하고 살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될성 싶은 인재 가르쳐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란 평가에 흐믓해하며 살아가는 것, 이러한 삶이 참으로 가치있는 군자의 삶, 그리스도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삶이란 확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군자된 것은 아니지만, 군자가 됐음으로 품위있는 삶을 살아감이, 주신 이의 은혜를 고마와 하며 그의 뜻대로 따르는 삶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dahn1957@gmail.com)
맹자가 설파한 군자의 즐거움은, 첫째 가정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둘째는 개인 양심의 떳떳함으로 인해 어디서든지 눈치 보지않고 바른말을 할 수 있는 즐거움, 마지막 세번째는 교육자로서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여 스승으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제자의 성장을 바라보며 기쁨을 누리는 것을 말한다. 출세하여 부귀 영화를 누리고 권력과 명예를 추구하는 삶은 군자가 누려야 할 진정한 즐거움이 될 수 없음을 처음과 끝 두차례나 강조하였다.
맹자가 예수는 몰랐어도 하나님의 뜻만은 제대로 알았던듯 싶다. 가정에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른 곳에서 욕구를 채우려하는 보상심리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가정으로부터의 행복을 느끼지 못할 때 다른 쾌락을 위해 찾아갈 곳은 도처에 널려 있기에 가정은 점점 파괴되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은 아래로 흐르는 법. 윗물이 더러운데 아랫물이 맑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도급 인사의 가정이 불안정 할 때에 사회 전반적으로 가정이 부실해질 것은 자명하다. 또한 남을 배려하는 차원도 아니면서 자신의 보신과 목적 추구를 위해서 바른말, 소신있는 행위를 하지 못하고, 조석으로 눈치만 살피는 무소신이 소신인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생각과 함께 걱정이 앞선다. 그들 앞에 머리 조아리는 힘없는 분들도, 그 처세술을 “나도”하며 배우면 사회는 어떻게 흘러가나 하는 기우에서다.
오래 전에, 이름을 익히들어 알고있는 동부지역에 계신 원로 목사님께서 부흥회 인도를 위해 이곳 워싱턴에 오신다는 신문 광고를 접하였다. 그곳에 살 때 그분에게 받았던 화려한(?) 이미지가 별로 좋지않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어서 광고에 나타난 그 분의 이력을 세어보았다. 과거 18가지 직임에서 10가지 정도의 직임으로 줄었음을 보고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시국 강연회 강사도 아니시고 말씀 사경회를 위해 먼길 오신 분 이력에 무슨 목사 경력에 없어도 될 경력, 아니 없으면 더 중량감 나가실 분에게 잡다한 이력들이 넘치는지…. 물론 사람에 따라 추구하고, 즐기고, 가치있다고 여겨 얻고자하는 바가 각기 다르기에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우선적으로 자신의 직임에 맞는 절제된 경력과 그것에서 얻어진 풍성한 열매를 보여줌이 모든 사람의 신망을 받는 길이 아닌가 한다. 작고 부실한 볼품없는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 보다는 열매의 수는 적지만 탐스럽고 먹음직한 과실이 달린 나무가 보기도 좋고 실속도 있기 때문이다. 헛된 명예와 영광의 추구는 자신을 오히려 초라하고 가볍게 만드는 법 아닌가?
우리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막론하고 영적으로 현대판 군자라 할 수 있다. 절제되고 구별된 삶을 살아야 이 세상에서도 군자 소리 듣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땅에서 갈고 닦고 연단받아 하늘나라에서 왕노릇 제대로 해야 될 몸들 아닌가? 이 세상에서의 왕노릇 높은 자리는 하나님께서 자연스럽게 주시면 하는 것이지 온 힘다해 추구할 바는 아니며, 필경 높은 위치에 있다 하여도 예수님처럼 섬김의 삶을 통해 봉사하는 자세로 임해야 될 줄로 안다. 명예와 권력을 추구함은 인간의 원초적 욕구이기는 하나, 본능대로 살아가면서 군자의 호칭 성도의 자격을 받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필자는 목사 안수 받은 후에, 석양 노을을 배경으로 빈배가 구석에 고요히 떠있는 사진이 들어간 흔한 액자를 하나 구해서 “虛舟(허주)”란 이름을 붙여 벽에 걸어두었다. 내나름의 虛舟에 담긴 뜻 즉 욕심부리지 않고, 무소유로 살며, 가르칠만한 인재를 내 배의 빈 공간 위에 태우고 함께 봉사의 길을 떠나고 싶은 나의 작은 소망을 걸어둔 것이다. 명품 가정 (3세대 이상이 신앙생활 잘하고, 남에게 폐 조금만 끼치고, 능력 닿는대로 봉사하고, 제 밥벌이 스스로하면 명품가정 아닌가?)을 이루어 즐기고, 하고싶은 덕스러운 말 마음 편히 다하고 살며, 어려운 처지에 있는 될성 싶은 인재 가르쳐 “제자가 스승보다 낫다”란 평가에 흐믓해하며 살아가는 것, 이러한 삶이 참으로 가치있는 군자의 삶, 그리스도인으로서 추구해야 할 삶이란 확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군자된 것은 아니지만, 군자가 됐음으로 품위있는 삶을 살아감이, 주신 이의 은혜를 고마와 하며 그의 뜻대로 따르는 삶임에는 틀림없는 것이다.(dahn195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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