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은 “교회를 어머니로 삼기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우리 신앙의 어머니입니다. 어머니인 교회 없이는 신앙이 제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로마 가톨릭의 성직제도는 거부했지만 주님이 세우신 교회를 존중하는 입장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칼빈은 “다른 무엇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자기 몸을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세상에서 무엇보다 몸된 교회를 더 사랑하실 것이라는 사실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회로 번역된 헬라어 에클레시아는 복음서엔 마태복음 16장 18절과 18장 17절에 두 번 나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을 보면 헬라어 에클레시아가 무려 70회나 나옵니다.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뜻을 가진 히브리어 카할을 에클레시아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카할의 뜻을 고려할 때,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을 섬기며 사랑하라고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존 머리는 “예수님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백성처럼 그분의 소유가 될 백성을 염두에 두고 ‘내 교회’라고 한 것이다. 교회는 여호와의 백성을 가리킨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생명을 희생하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20:28)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셨습니다(엡5:25). 교인들이 교회를 비난하고 소홀히 대할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목숨을 버리고 세운 교회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교인 한 사람 한 사람보다 출석수에 더 신경을 쓰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했습니다. 처음엔 주보에 기록할 통계자료가 필요해서 그랬는데, 나중엔 그 숫자로 나의 목회와 교회를 평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든 아니든 출석수가 많은 게 좋았습니다. "세상에 숫자를 과시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예수 믿고 구원얻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Iain Murray (오스트리아 장로교 목사)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교회가 실망시켜 상처받은 교인들이 교회에 무관심해지는 일이 없도록 나부터 반성합니다. 교회가 잘못된 길로 갈 때 치열하게 비판하더라도 교우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잃지 않기 바랍니다. 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교회의 일원이 된 것은 큰 특권입니다. 땅위의 교회를 사랑하지 못하면 주님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교회는 몇 번째입니까? 교회를 놓고 서열을 따지는 게 좋아보이지는 않지만 여러분에게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보는데 도움이 될 겁니다. 교회가 가족, 직장, 친구, 취미생활 보다 당신에게 더 중요합니까?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교회를 첫번째 자리에 놓고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