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팩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을 보면 “고통을 감수 하는 능력”이라는 것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있다. 그 중에 하나를 같이 나누고 싶은데 그것은 “한 사람의 위대성의 척도는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통을 감수하는 능력이 크지만 그 보다 더 큰 것은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큰 능력은 “고통 가운데서 기쁨을 찾아 내는 능력이며 그보다 더 위대한 능력은 고통너머에 행복을 내다보는 능력 즉 고통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능력”이라는 것이다. 미래에 대해 볼 수도 만질수도 없는 꿈과 행복 그리고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삶에 고통이 주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삶의 환경에서 오는 환난과 고통은 분명 유익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할 수있다.

이에 대한 말씀을 성경에서 본다면 그것은 로마서5:3-4절의 말씀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이 소망은 사랑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며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영혼에 대한 사랑인데 주님이 죄인들을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 사랑을 열국에 전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진정한 삶의 행복을 누릴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을 이루는 주체와 행복의 결실까지도 사람이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께서 움직이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큰 그림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유대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음으로 인해 예루살렘교회가 튼튼하게 세워지게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베니게,구브로,안디옥등 국외로 쫓겨나다시피 흩어져 살았지만 그들은 낙망하지 아니하고 그 고통 가운데 복음을 전하는 사역을 했을 뿐 아니라 이방교회에 최초의 교회가 세워지는데 그것이 바로 안디옥교회이다. 결국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게 됨으로 인해 안디옥교회가 이방 선교의 전초기지가 되었을뿐 아니라 모태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가 흉년으로 고통받을때 안디옥교회 교인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해 구제를 한 것이다. 복음을 위해 고통이 주어지는 것을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라고 안다면 그것은 삶의 목적을 줄 뿐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고통을 이겨내는 능력도 갖게 되는 것이며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리게 되고 종국에는 영원한 행복된 삶을 위해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산 위대한 사람들이 성경속에 많이 있지만 그 중에 “고통을 감수한 사랑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사람을 이야기 하라면 그는 룻이라는 한 모압여인이다. 그 여인은 이스라엘에 흉년이 들었을때 나오미와 그 의 남편과 두아들이 모압지역으로 이주 하였을때 두 아들중 한 아들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런데 모압지역에서 나오미는 남편과 두아들이 죽게되는 고통을 받게 되고 그후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에게 말하기를 나는 이스라엘로 돌아갈테니 너희는 각기 고향으로 갈 것을 권면하였다.

그때 오르바는 고향을 향해 떠났지만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말하기를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1:16) 이렇게 강한 마음으로 현실의 문제를 극복한 모압여인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나오미의 친척인 보아스를 만나 생계를 이어가고 마침내는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었고 이방 여인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이루는 다윗의 선조가 된 것이다. 비록 룻은 모압 여성이고 남편을 잃어 버렸으며 타국에서 시어머니와 생활을 하였지만 그가 시어머니를 생각하는 지극한 효도가 자신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게된 것이다. 룻을 보면 “사랑으로 인한 선택”, “사랑으로 인한 섬김”,”사랑으로 인한 청혼”과 “사랑의 열매”의 결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다. 삶의 목적 상실과 현실에 무거운 경제가 당신의 삶을 누르고 그것으로 인한 고통이 너무나 커서 감당하기가 힘들게 느껴져 무기력증에 빠지고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죽고싶은 마음이 든다면 룻이 시어머니에게 고백한 것을 당신이 주님에게 고백하는 말로 바꾸어 반복해서 주님께 고백한다면 주님이 당신에게 ‘고통속에 희망”을 주실 것이다.

“나로 주님을 떠나며 주님을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주님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주님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주님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주님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이러한 고백을 통해 삶의 전적인 통제권을 가지신 하나님과의 관계형성을 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룻이 나오미에게 사랑을 고백한 것처럼 당신이 하나님께 주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한다면 분명 하나님께서 고통의 환경을 기쁨의 환경으로 바꾸어 놓으실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을 해야 할 것은 이러한 고백을 한다고 해서 고백한대로 삶의 환경이 쉽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현실의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면 환경은 그대로 있다 할지라도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것이 바뀌어 간다는 것이다. 그것은 곧 현실의 어려움이 더 이상의 어려움이 아니라 감사할 조건으로 바뀔 뿐 아니라 매사가 주님의 은혜로 느껴지게 되며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이전에 가져 보지 못했던 축복을 하늘문을 열어 부어 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신앙의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삶속에서 기쁨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 기쁨은 “사랑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며 주님의 사랑이 삶을 통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그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의 마음속에 고통이 바뀌어 기쁨을 누리기에 그 속에서 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고 그 사랑의 열매의 결과로 삶의 행복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