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으로부터 어머님이 위독하시니 급히 귀국했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받고 서둘러 떠난 것이 지난 달 9일이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어머님이 입원해계신 병원으로 향했다. 중환자실에 도착한 나는 까운으로 갈아 입고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작년에 뵈었던 모습과는 너무나 야위신체로 여러대의 주사기를 끼고 가쁜 숨을 쉬시면서 고통스러워 하고 계셨다. 북받이는 울음을 참고 어머니 품에 엎드려 한참을 기도하고 나서 바라보니 눈물 가득히 고인 눈을 뜨시고서 웃으신다. 반가워서 형님이 '어머니, 미국에서 작은 아들 박목사 내외가 왔어요.'하고 큰 소리로 말씀 드리자 알아들으셨다는 듯이 어머니는 또 다시 그 특유의 웃음을 웃으신다.

나는 병원측에 특별히 양해를 구하고 중환자실에 자주 갔다. 폐에 암이 전이 되었다는 주치의 말을 듣고서 어떻든지 돌아 가실 때 너무 많이 고통받지 않으시기를 간절히 기도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의식이 돌아 오시면 귀에 대고 성경을 읽어 드리고 찬송을 불러 드렸다. 어찌나 좋아 하시는지 모르겠다. 금년에 98세가 되신 우리 어머니는 목사님의 따님이기도 하셨지만 '기도 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지신 기도의 어머니셨다. 47년 전에 아버님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 가신 후 자녀를 오로지 기도의 힘으로 키워 내신 기도의 어머니셨다.

온양에 사는 여동생이 올라와서 오후에 다시 어머님을 뵈러 갔다. 그런데 어머님의 건강 상태가 날로 안좋으시다. 그래도 동생이 사가지고 간 평소에 좋아하신다는 바나나 우유를 드시고 동생과 우리 내외도 알아 보셔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다 동생더러 '너 집이 머니까 늦기전에 어서 가라'고 하시더니 '야, 나좀 자고 싶어. 자꾸 졸음이 와.... ' 하셔서 어머니 그럼 주무세요, 또 올께요'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 인사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그렇게 빨리 가실 줄을 몰랐다.

집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려는 사이에 전화가 왔다. 어머님이 운명하셨다는 연락이다. 그래서 형님과 급하게 달려가 보았더니 조금 전에 주무시겠다던 그 모습 그대로 평안히 누워 계셨다. 도저히 돌아가신것 같지 않게 주무시다가 그대로 하늘나라로 가셨다. 마지막 가실 때 아프지 않고 고통 없이 가시를 간절이 기도해 왔는데 하느님께서 자식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

어머니는 형님의 소망대로 100세를 채우시지는 못하셨어도 98세를 사시는 동안 무병 건강하게 신앙 안에서 행복하게 지내시다가 쓰러지신 후 40여일을 앓으시고 주무시다가 그냥 주무시던 그대로 돌아 가셨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이 내가 죽거든 이 찬송을 불러 달라고 하셨다. 그래서 장례 예배 때에 울면서 힘차게 불러 드렸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집에 가 쉴 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이것이 어머니의 믿음이요 간증이요 고백이셨다. 그렇다 우리의 나그네 인생 끝이나면 주님이 우리를 영접해 주신다. 그래서 궁극적 소망과 영원한 소망은 천국이다. 이것이 주님의 약속이요 믿는 자에게 주시는 상급이다. 천국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며 그 강 좌우에는 열두 가지 실과가 달마다 맺히고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다고 했다(계22:1).

지금와 생각하니 때 맞추어 귀국하여 사랑하는 어머님과 마지막 9일을 행복하게 지내고 정성 다 하여 장례도 치뤄드리고 돌아왔다. 모든 것이 그저 감사하다. 오늘도 어머니 생각이 자꾸 자꾸 난다. 그래서 어머니 사진을 바라보다 어머님이 가신 저-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석양에 쳐다보고 있다. 어머님이 가 계신 저 영광 나라, 하늘 나라, 그 나라를 사모하면서 오늘 내 앞에 놓인 삶을 열심히 살아야지... 나도 어머니처럼 그렇게 평안하게 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