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정해 놓고 교회가 기도했다고 하는 기록은 200년 경 알렉산드리아의 크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의 글에서 발견된다.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고”, 머리와 손을 하늘로 향해 들고 하나님께 아뢰며“라는 글로 그는 새벽기도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새벽기도는 아직 아침기도로 통용되고 있었다. 터툴리안(tertullian)의 글에 따르면, 규칙적으로 하루 세 번의 기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3시, 6시, 9시와 해가 뜰 때, 그리고 해가 질 때 기도회가 있었다고 한다.

전형적인 새벽기도에 대한 증거는 가에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337 A. D.)의 글에 나타난다.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를 교회는 해가 뜨고 지는 때에 하나님께 찬송드려야 한다”고 언급한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새벽에 기도드리는 습관은 중세교회에 들어오면서 수도원과 교회를 통해 “라우드스(Lauds)"라는 하루 7번의 기도시간 중의 하나로 정착하게 된다.

근대에 들어서 새벽기도는 처음부터 영국성공회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영국성공회에서는 새벽에 드리는 기도를 “가장 소중한 시간(Cchief hours)"이라고 생각했다. 존 웨슬리(John Wesley)가 가담했던 옥스퍼드운동(Oxford Mov.)을 통하여 실시되고 있었고, 루터교회들도 함께 새벽기도회를 드리다가 1790년에 가서야 사라지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제 2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1962-3년) 다시 “기도시간 지침서(The Liturgy of the Hours)”라는 예배지침서를 통해 새벽기도를 부활시켰다(본문 참조: James F. White, A Brief History of Christian Worship, pp 52-55, 155.).

한국에서의 새벽기도회의 유래는 1907년 평양장로회 신학교 제 1회 졸업생이었던 길선주(吉善宙)목사에 의해 1906년에 처음으로 실시된다. 당시의 예배는 4시 반이나 5시에 시작했고,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그리고 해뜨는 시간을 기준으로 해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로 시작한다는 의미로 기도회가 시작 되었다고 한다(박아론, 새벽기도의 신학, pp 60-63).

제 2바티칸회의(62-63)의 기도시간 예배지침서(The Liturgy of Hours)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새벽에 드리는 기도회(Lauds)와 저녁 해질 무렵에 드리는 저녁기도(Vespers)를 창조와 혹은 구원의 시간과 재림 혹은 부활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교부시대의 전통적 의미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음을 뜻한다(Geoffrey Wainright and Karen B. Westerfield Tucker, edit., The Oxford History of Christian Worship, p. 718.).

한국에서의 새벽기도회의 동기는 하루 중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자는 신앙의 충절로부터 시작한다. 박아론교수는 한국에서 처음 시작했을 때의 새벽기도의 의미를 세 용어로 표현한다. 신비, 고요, 생기, 즉 새벽기도회를 통해 하나님과의 묵상을 통한 신비적 관계가 형성되고 또한 고요한 자기 성찰에 의한 관상적 기도와 새로운 힘을 하늘로부터 받는 첫 시간으로 규정한다(박아론, ibid., p. 65.).

한국 개신교에서의 새벽기도는 평신도들에 의한 집단적인 새벽기도회 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상 유례없는 특별한 모델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한국교회는 성경적 근거로부터 새벽기도회의 신앙적 동기를 찾는 것 같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라(시46:5)”,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시57:8)” 등(시108:2;119:147)의 말씀이 중요한 동기 부여의 근거가 되는 것 같다.

특별히 한국 교회는 새벽기도회를 새벽예배라고 칭하며 기도 보다는 말씀을 통한 예배중심으로 드리는 전통도 함께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이미 중세교회에서 아침기도회와 더불어 잠에서 깬 첫 시간을 “성경 읽기를 통한 거룩한 헌신(lectio divina)”으로 드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말씀을 강조하는 한국 개신교의 분위기와 더불어 함께 접목되면서 정착한 것 같다.

이미 새벽기도회는 한국교회의 상징적인 모델이 되었다. 역사상 찾아 볼 수 없는 성도들에 의한 집단적인 새벽기도회 운동은 한국교회의 개신교 역사 12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놀라운 성장을 약속해 주었다.

그러나 많은 긍정적인 요소로 크게는 전체 기독교의 부흥으로부터 작게는 개인의 신앙 성찰과 소원을 이루는데 까지 이르게 되었으나, 몇 가지 오래된 습관과 왜곡된 동기 및 목적의식의 이탈을 경험해 오고 있다. 한국교회가 너무나 지나친 구복적 신앙으로 새벽기도회를 자기 목표성취를 위한 도구로 삼는 경우를 들 수 있다. 교회의 부흥을 위한 기도목표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이기적인 목표를 위한 새벽기도회, 즉 대학입시를 위한 특별 새벽기도회, 혹은 사업성취를 위한 축복 새벽기도회등과 같은 취지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때로는 새벽기도회가 목회전략을 위한 하나의 경영기법으로 혹은 교회문제를 해소하는 동기에서 잘못 출발한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새벽기도회의 전통은 단지 갑자기 돌출된 신앙 전통이 아니라 오랜 성경적 기원으로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이미 검증된 참 신앙의 한 방법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