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렸을 적/산 속에서 길을 잃고/엄마야 ! 엄마야 ! 엄마야 ! /울부짖던 그 소리/지금껏 내귓바퀴에서 서성이며 살다가/이제야 어머님 무덤가에 사시사철 멤돌며 산다/엄마야, 엄마야, 엄마야/오냐,오냐, 오냐•• 허리 굽혀 깻잎 솎던/어머니의 굽은 등은/이젠/아스라히 멀기만 한 산등성인데/들깻잎 향기는/바람 타고 그 산등 넘고/물 건너 들판 지나와서/우리 식구 밥상에서/더욱 향기롭다”

들깻잎 솎던 어머니의 굽은 등을 무덤가에 와서나 깨닫고 슬퍼하는 어리석은 무명 시인의 사모곡(思母曲)이다. 무거운 짐을 질 때 제일 수고하는 것은 등이다. 둥이 굽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수고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손자 손녀 열 하나를 보셨다. 남들 보기에는 다복하신 분으로 보이겠으나 그들 대부분을 업어 키우신 어머니는 등을 펼 날이 없으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가부장적이라 어미니께 도통 무심하셨다. 그러나 어머니는 평생 위장병을 앓으셨던 아버지의 등을 쓸어 드리느라 정작 본인은 편히 등 붙이고 잠드시지 못하였다. 평생 짝 사랑하신 것이다.

황해도가 친정인 어머니는 한국동란 이후 한 번도 그리운 친정 부모님과 형제를 만나시지 못했다. 사리원에서 유기공장을 경영하신 부자 아버지밑에서 곱게 자란 어머니는 내색은 안하시나 며느리가 친정 나들이 할 때 속으로 얼마나 부러우셨을까? 시댁 식구들은 전부 월남해 전란 전에 서울에서 직장을 잡고 계셨던 아버지 집에 들러 한동안 신세를 지고 떠나고는 해서 어머니는 고된 시집살림을 살아야 했다.

효자남편은 월급을 꼭 시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려서 시어머니 생전에는 자신 마음대로 살림을 살아 보지 못하셨다. 꽃다운 새댁의 젊음은 이렇게 중노동 가사로 덧없이 흘러갔던 것이다. 그렇게 모진 세월을 사셨으면서도 미수의 나이를 사신 것은 정말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지금 어머니의 등은 많이 굽으셨다. 어머니가 제일 부러워하는 것은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꼿꼿하게 걸어 다니시는 것이다. 그리고 허리가 부러진 것처럼 아파하신다. 정말 죄송스럽다. 그 어머니의 등에서 내아들과 딸이 잠들고는 하였다. 그 어머니의 등은 내게는 은혜의 등이다. 그러나 나도 별 볼일 없이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어머니의 굽은 등을 생각하면서 애곡성을 읊을 것이다. 이것이 모두 어리석은 자식들의 사모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