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페어팩스 퓨너럴홈에서 있었던 간소한 장례예배가 마음에 남는다. 시종 엄숙하고 경건하게 드려진 영결예배 현장엔 거창한 조화(弔花) 행렬이 없다. 다만 강대상 뒤편에 퓨너럴홈에서 만든 작은 꽃바구니 두개와, 고인(서언례)의 정갈한 마지막 모습을 모셔놓은 캐스킷 위에 놓인 소박한 꽃바구니가 달랑 전부였다.

4월 29일자, 조간신문을 읽다가 부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페어팩스 광역교육위원으로,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로 한인사회와 미 주류사회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문일룡 변호사 모친의 부음 소식이었다. 6년간의 기나긴 와병 끝에, 주의 부르심을 받고 훌쩍 이승을 떠난 것이다. 놀랐던 가슴은 '조의금' 전액을 굿스푼에 기부한다는 기사에 마음이 짠하게 젖어왔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보다 더 뻑적지근하게 성대한 장례를 치룰 수 있는 명문 가문이지만 소중한 것을 가난한 사람 구제와 영혼 전도에 사용하려고 소박한 장례 절차를 고집했던 것이다.

고인은 6년간 와병중에 있으며 이런 날을 미리 예견한듯 유언을 남겼다. “본향으로 돌아갈 마지막 날이 되거든, 검소하게 치러달라. 경기 침체가 심각한 때, 조문객들에게 괜한부담되지 않도록 조화, 조의금은 절대 사절하라. 이생에서 다하지 못한 마지막 말을 묵묵히 바라봄으로 나눌 수 있는 조촐한 장소와 시간만 있으면 된다. 부득이하게 조의금을 받게되거든, 도시빈민들의 한끼 점심식사를 위해 기부하라”고. 생사 갈림길에서 조차 남은 자들과 가난한 이웃을 살뜰히 챙기는 고인의 특별한 당부를 받든 유가족들이 밀려오는 슬픔속에서도 준비한 예식이었다.

정갈하게 준비된 장례 예배는 그렇게 소박한 모습으로 드려졌다. 이윽고, 초로의 맏상주가 모친의 짧지만 굵었던 생애를 추모한 후, 애잔하게 조가를 부른다. 그가 슬픔을 억누르며 부른 노래는 흔히 부르는 찬송곡이 아니었다. 1930년대, 양주동이 쓴 명시에, 이흥렬이 곡을 붙힌 ‘어머니 마음’이란 곡이었다. 첫번째 소절을 부를땐, 조문객 모두가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었다. 두번째 절부터는 일부만 기억났다. 세번째 절은 너무 생소하여 부끄러운 맘으로 경청했다.

“어려선 안고 업고 얼러주시고, 자라선 문 기대어 기다리는 맘, 앓을사 그릇될사 자식 생각에, 고우시던 이마위에 주름이 가득, 땅위에 그 무엇이 높다 하리오, 어머님의 정성은 지극하여라.” 사무치는 그리움에 부르는이의 목이 눈물로 젖는다. ////// “사람의 마음속엔 온가지 소원, 어머님의 마음속엔 오직 한가지, 아낌없이 일생을 자식 위하여 살과 뼈를 깍아서 바치는 마음, 인간의 그 무엇이 거룩하리오, 어머님의 사랑은 그지 없어라.”

삼절이 끝날 무렵 장내엔 슬픔의 파도가 출렁거린다. 유가족들의 흐느낌이 거세진다. 조문객들조차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굵은 눈물을 연신 찍어낸다.

일제 강점기에 자란 고인은 형편상 정식 학교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고인의 또 다른 별칭은 ‘내가 뭐(I’m Ok)’다. 남편과 세 자녀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안위와 즐거움은 항상 맨 뒤로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육신이 쇄약해지도록 가족과 이웃에게 베푼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은 모든이의 가슴에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사랑의 흔적으로 남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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