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주일을 맞으며 자녀들에게 주의 축복을 빕니다. 어떤 사람이 아들에게 이런 유서를 남겼습니다. “나의 전 재산을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지만, 내 아들이 바보가 되기 전에는 그 유산을 물려줄 수가 없다.” 이 소식을 들은 랍비가 그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당신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유언을 남겼군요? 당신의 아들이 정말 바보가 되지 않는 한 재산을 물려줄 수 없다니, 도대체 무슨 이유입니까?”그러자, 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갈대를 입에다 물고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마루 위를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행동은 자기 아들이 아이를 낳아 그 자식을 귀여워하면 자기의 전 재산을 상속시켜 준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내용이었습니다. “자식이 태어나면 그 부모는 바보가 된다.”는 속담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고, 어린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하나님을 떠난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일 것 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가 있다면 하나님 편에서는 “사랑”이라는 단어요, 인간 편에서는 “회개”일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주고 있는 아름다운 예화가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라는 것은? 자기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바른 길로 돌아가는 결단을 내리는 것 입니다. 사실 자기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해서 전부 돌이키는 것은 아닙니다. 돌이킬 때 가장 큰 걸림돌은 자존심입니다. 도대체 무슨 낯으로 아버지께 돌아가겠습니까?

탕자가 마지막으로 돌이키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은 자만의 자존심이었습니다. 그것을 내려놓아야 아버지께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의 잘못을 깨닫고, 그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기적을 경험하는 삶을 사는 사람일 것 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달려오고 계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부둥켜안고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잃었다가 다시 찾는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요즈음 한 영혼을 전도하려해도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함없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오늘도 잃어버린 자들을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이러한 부르심에 활발하게 응답하는 교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에리히 프롬이 그의 책 “소유냐 존재냐?”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탕자는 재산과, 자유와, 쾌락을 소유 하고자 아버지 집을 떠납니다. 그토록 갈망하면서 얻어낸 그 물질과 해방감과 쾌락은 잠시 뿐, 그에게는 기근이 찾아옵니다. 먹을 것 뿐 아닌, 건강과 마음까지 황폐해져 돼지들 틈에서 쥐엄 열매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 속에서 아버지 집을 생각하며 자기 존재를 찾습니다. 이런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 먼발치에 눈에 띄자 맨발로 달려 나가 끌어안고 입 맞추며, 좋은 옷에 반지며 신발까지 신겨주며, 살찐 송아지 잡아 잔치 열어 기뻐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핵심입니다. 배신하고 떠나 재산 탕진하고 돌아온 자식을 탓하지 아니하고, 그저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하시는 아버지 사랑, 하나님 사랑! 이것이 기독교의 구원의 핵심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