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5)

죄는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그랬어?”를 연발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할 만큼 상식적이지도 않다. 잘못인줄 빤히 알면서도 죄를 짓는다. 때로는 의지적인 결단을 통하여 스스로 죄에 빠지지도 않고 묶이지도 않을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인 것처럼 말하기도 하지만,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보면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죄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왜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일까?

아담과 이브의 타락은 본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에덴 동산이라고 하는 이상적인 삶의 환경에서 추방 당했을 뿐만 아니라, 아담과 이브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죄와 하나님의 저주의 영향 아래 태어나게 되었다. 이 말은 아담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죄를 지으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죄인의 신분으로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죄를 짓는다. 이것이 사람들이 죄를 짓는 이유를 가장 설명 할 수 있게 한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나무를 예로 들어 설명하셨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누가복음 6장 43절). 가시나무가 무화과를 맺을 수 없고 찔레가 포도를 맺을 수 없다. 나쁜 열매가 맺혀서 나쁜 나무가 아니라, 나쁜 나무이기 때문에 나쁜 열매가 맺힌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분명히 짚고 넘어 가신다.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5절). 달리 표현하면, 의인이기 때문에 의를 행하고,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유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유가 있어도 죄인으로서의 자유는 죄를 짓는데 자유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선을 행하는 데는 부자유하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수 안에서 거듭난 새 사람이라야 진정으로 선을 행하는 일에 자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포하신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 장 32절).

죄인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언약 관계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태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담과 이브의 범죄 이후, 죄의 영향력 아래 태어나는 사람들은 속사람인 영혼의 기능이 마비되면서 지, 정, 의의 영역에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없이 태어난다. 이런 측면에 대한 고찰로부터 사람은 태어날 때 그 정신 상태가 흰 종이와 같이 빈상태로 태어난다고 주장한 철학자도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주장과는 달리 사람은 하나님이 지어 놓으신 자연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인지하고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있으며, 본성적 양심의 기능적 역할을 통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지만, 죄의 영향 아래 놓여 있는 속사람의 기능적인 역할이 온전하지 못하여 참 하나님을 배척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하나님으로 착각하고 섬기는 어리석은 존재들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로마서 1장 19절-23절, 2장 14절-15절).

죄의 영향력은 곧은 막대기를 물통에 담구어도 물이 햇빛을 굴절시켜 곧은 막대기가 구부러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듯이, 사람으로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왜곡된 지식을 갖게 한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아담의 타락 이후 사람들은 일반 계시 혹은 자연 계시만으로는 하나님을 바르게 알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고, 이것 때문에 성경이라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 혹은 초자연 계시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성경을 가진다고 하여 근본적인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사람이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는 진리와 지식이 제시되어 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직도 아담과 이브를 거짓말로 미혹하여 죄를 짓게 만들었던 사단의 활동이 여전히 액티브하게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고 거기에 거짓말을 더하여 아담과 이브로 하여금 하나님이 주신 명령의 말씀을 대적하게 만들었던 사단의 전략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아담과 이브의 전철을 밟게 만들고 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산다고 주장하게 하면서도, 실상은 성경에 있는 것은 빼고 성경에 없는 것은 더하고, 그 위에 약간의 거짓말을 음식에 조미료치듯 가미하여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미혹의 영의 역사를 조금만 주의하여 보아도 사단의 이런 전략이 오늘날도 얼마나 주효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끝으로, 사람이 죄를 짓는 이유를 하나 더 추가하자면 타락한 본성의 욕구를 자극하는 세상의 유혹을 말 할 수 있다. 마음에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가 없으면, 그 사람에게 이 세상은 그 사람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에게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이 삶의 모든 것이라면, 세상의 무대가 화려한 것만큼 이 세상에서 자기의 욕심을 따라 세상에 도취하여 이 세상만큼이나 화려하게 살아 보려고 하지 않겠는가? 세상이 모든 것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고 산다고 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성경 도처에서 볼 수 있는 일이지만, 특히 로마서 1 장 후반부는 이렇게 세상이 모든 것이라고 믿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며 사는 사람들이 맺는 삶의 열매를 적나라 하게 열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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