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3년 간의 공적 사역이 끝나갈 무렵에 적어도 세번,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16:21~; 마17:22-23; 마20:17-19). 때가 되자 예수님은 죽음을 각오하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장로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거침없는 비판을 가했니다. 예수님은 가는 곳마다 충돌을 일으켰다. 성전을 장사치의 소굴로 만드는 사람들을 쫓아내고 상과 의자를 둘러 엎었다. 돈을 받고 그것을 용인한 대제사장과 하수인들에겐 예수님의 행동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행동을 지적하고 부자들 보고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경고했다. 종교지도자와 부자들에게 예수님은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비판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의 입을 막을 방법을 강구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나와 하나님 아버지는 하나”이며 자신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한 바가 있었다. 그들은 이 말로 예수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로마제국에 반역을 꾀한다는 구실로 백성들을 선동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해야 한다는 여론을 만들어 냈다. 군중들의 데모에 위협을 느낀 유다 총독 빌라도(Pontius Pilatus)는 예수님에 대한 군중들의 요구가 부당한 것임을 잘 알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허락했다.

예수님의 처형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졌다. 안식일에 시신을 방치하는 부정을 피하기 위해 옆구리에 창을 찔러 죽은 것을 확인한 후 급하게 시신을 수습해 돌 무덤에 넣었다. 당국자들은 죽음을 당한 후 삼일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말이 마음에 로마병사를 시켜 무덤 입구를 굳게 지키게 했다. 그런데 삼일이 지난 후 무덤 안에 있어야 할 시신은 보이지 않고 예수가 살아났다는 소문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듣고 총독과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혼비백산했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에서 예수님의 부활이 갖는 의미는 부활이 없었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분명해진다.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기독교신앙은 존재할 수 없다. 바울 사도의 말처럼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 되고, 우리는 여전히 죄가운데 멸망할 수 밖에 없으며, 예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될 것”이다(고전15:14,17,19). 실제로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불쌍한 사람쯤으로 안다. 그들이 보기에는 존재하지도 않는 신에게 얽메여 재미없게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다.

지금 세상에는 70%가 넘는 사람들이 불신자다. 70억이 조금 넘는 세계 인구중에 기독교인은 22억 정도라고 하는데, BBC 보도에 따르면 10억이 조금 넘는 정도라고 한다. 아무리 많이 잡아도 기독교인구는 30%에 미치지 못한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기준으로 미국은 그리스도인 숫자가 50%을 넘지 않는다. 한국은 명목상 그리스도인까지 포함하더라도 30%를 넘지 않는다. 중국은 그리스도인수가 8%(1억)정도, 인도는 3%정도, 일본은 0.5%(51만)에 불과하고, 아시아는 기독교인구가 3%정도라고 한다.. 이런 세상 현실을 감안할 때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가장 긴급한 일은 세상에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