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동생으로도 유명한 이윤진 선교사가 미국, 네팔, 사모아 성도들에게 한국의 굳건한 신앙을 간증했다. 다민족교회 성도들은 한국 이명박 대통령의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이 선교사로 헌신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고, 이 선교사의 간증에 마음을 나누며 어려웠던 시절 굳건한 신앙을 지켰던 한국인의 믿음에 경의를 표했다.
지난 29일 이윤진 선교사는 워싱턴주 선교집회 일정 가운데 첫 교회로 시애틀 열린문교회(담임 조범철 목사)에서 간증했다. 시애틀 열린문교회는 30년 동안 10여 명이 남아 명맥을 유지해 온 미국 교회에 한국인 1.5세 목회자가 청빙 돼 2년 만에 다민족 교회로 거듭나 화제가 된 교회로 최근에는 다민족 교회로 성장한 교회다.
이 선교사는 참석한 다민족 성도들에게 극도의 가난 가운데서도 5남매를 신앙으로 키웠던 어머니의 신앙을 간증했고, 성도들은 현재 이 선교사가 전개하고 있는 탈북자 선교의 중요성을 말할 때는 아멘과 박수로 힘껏 격려했다.
이 선교사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어머니께서는 매력 있고 젊고 예쁜 어머니는 아니셨지만 한 결 같이 조국과 이웃,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했다”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목회자를 섬겼던 누구보다 아름답고 고귀한 신앙을 지니셨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이 선교사는 “어려웠던 시절 형제들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신앙의 힘 이었다”며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거룩과 신앙의 구별을 직접 보여줬고, 너무도 힘들어 하는 자녀들을 향해 지금은 힘들지만 예수님을 잘 믿고 의지하면서 땀을 흘리면 너희들의 미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가르쳐줬다”고 전했다.
“어머니께서 언제나 조국을 위해 먼저 기도했고, 가족들을 위한 기도보다 동네 교장선생님 국회위원, 동장, 통장, 이웃들의 이름을 먼저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주린 배를 물로 채우시며 절약할 때도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신학생들의 학비와 교재비를 대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돈이 많다고 남을 돕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줬고, 아무리 없어도 예수님의 사랑이 있으면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 물질이 있거나 없어나 항상 기뻐하는 신앙을 가르쳐주셨고, 나보다 환경이나 여건이 좋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선교사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아침 기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고 아침 기도가 끝나면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 가게가 있어서가 아니라 학교 앞 동네 한 모퉁이에 작은 좌판을 펼치고 풀빵과 뻥튀기, 호떡, 겨울에는 동네 한 모퉁이에서 생선을 한 궤짝 놓고 팔기도 했다. 그래도 밥을 먹기 힘들어 오빠 셋은 해수욕장을 돌며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저녁에는 극장 앞에서 수박과 과일을 팔았다”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을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 장로와 얽힌 사연을 소개하면서 “오빠는 이태원 시장에서 청소를 하고 공사장에서 험한 일을 했는데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었다. 밤에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면 오빠는 책상과 다리를 끈으로 묶고 공부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선교사는 “어머니의 기도의 끝은 언제나 5남매를 위해 기도였다”며 “어머니의 기도는 하나님 나는 무식하고 연약하고 병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5남매 밥도 먹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되고 교회에 충성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 받는 종이 되게 해달라는 것 이었다”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했다.
그는 이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세상을 향해 호소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와 구하는 것이 먼저”라며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우리 삶을 맡길 때 진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선교사는 중국 선교 사역을 소개했다. 그는 “너무도 배가고파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들은 구타와 심지어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도 공안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다”면서 중국 선교 사역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9일 이윤진 선교사는 워싱턴주 선교집회 일정 가운데 첫 교회로 시애틀 열린문교회(담임 조범철 목사)에서 간증했다. 시애틀 열린문교회는 30년 동안 10여 명이 남아 명맥을 유지해 온 미국 교회에 한국인 1.5세 목회자가 청빙 돼 2년 만에 다민족 교회로 거듭나 화제가 된 교회로 최근에는 다민족 교회로 성장한 교회다.
이 선교사는 참석한 다민족 성도들에게 극도의 가난 가운데서도 5남매를 신앙으로 키웠던 어머니의 신앙을 간증했고, 성도들은 현재 이 선교사가 전개하고 있는 탈북자 선교의 중요성을 말할 때는 아멘과 박수로 힘껏 격려했다.
이 선교사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어머니께서는 매력 있고 젊고 예쁜 어머니는 아니셨지만 한 결 같이 조국과 이웃,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했다”면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목회자를 섬겼던 누구보다 아름답고 고귀한 신앙을 지니셨던 분”이라고 소개했다.
이 선교사는 “어려웠던 시절 형제들이 최선을 다해 살 수 있었던 비결은 어머니께서 가르쳐주신 신앙의 힘 이었다”며 “어머니께서는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거룩과 신앙의 구별을 직접 보여줬고, 너무도 힘들어 하는 자녀들을 향해 지금은 힘들지만 예수님을 잘 믿고 의지하면서 땀을 흘리면 너희들의 미래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신다고 가르쳐줬다”고 전했다.
“어머니께서 언제나 조국을 위해 먼저 기도했고, 가족들을 위한 기도보다 동네 교장선생님 국회위원, 동장, 통장, 이웃들의 이름을 먼저 부르면서 기도했습니다. 기도와 함께 주린 배를 물로 채우시며 절약할 때도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아무도 모르게 신학생들의 학비와 교재비를 대주셨습니다. 어머니는 돈이 많다고 남을 돕는 것이 아님을 가르쳐줬고, 아무리 없어도 예수님의 사랑이 있으면 도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또 물질이 있거나 없어나 항상 기뻐하는 신앙을 가르쳐주셨고, 나보다 환경이나 여건이 좋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 선교사의 간증후 기도하는 성도들ⓒ김브라이언 기자 |
이 선교사는 “우리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아침 기도 소리를 들으며 일어났고 아침 기도가 끝나면 어머니는 장사를 나가셨다. 가게가 있어서가 아니라 학교 앞 동네 한 모퉁이에 작은 좌판을 펼치고 풀빵과 뻥튀기, 호떡, 겨울에는 동네 한 모퉁이에서 생선을 한 궤짝 놓고 팔기도 했다. 그래도 밥을 먹기 힘들어 오빠 셋은 해수욕장을 돌며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저녁에는 극장 앞에서 수박과 과일을 팔았다”고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을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 장로와 얽힌 사연을 소개하면서 “오빠는 이태원 시장에서 청소를 하고 공사장에서 험한 일을 했는데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었다. 밤에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면 오빠는 책상과 다리를 끈으로 묶고 공부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이 선교사는 “어머니의 기도의 끝은 언제나 5남매를 위해 기도였다”며 “어머니의 기도는 하나님 나는 무식하고 연약하고 병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내 힘으로는 5남매 밥도 먹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셔서 하나님께 영광되고 교회에 충성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쓰임 받는 종이 되게 해달라는 것 이었다”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했다.
그는 이어서 “어려움이 있을 때는 세상을 향해 호소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나와 구하는 것이 먼저”라며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우리 삶을 맡길 때 진정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끝으로 이 선교사는 중국 선교 사역을 소개했다. 그는 “너무도 배가고파 중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그들은 구타와 심지어 전기 고문을 당하면서도 공안들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외쳤다”면서 중국 선교 사역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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