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을 향해 난 길을 따라 엄청난 인파가 줄을 지어 서있습니다. 목을 길게 빼고 한 곳을 응시하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 특히 나귀를 탄 한 사람을 발견하고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합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흥분한 군중들은 그를 향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기 시작했고,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길 위에 펼치며 그를 경배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아주 열렬히, 그 남자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정말 이상한 것은, 나귀를 탄 그 남자의 얼굴에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웃음이 배어있는 것입니다. 아주 지독하게 외로워 보이는 웃음이 말입니다.

성경은 세상에서 가장 고독했던 남자 예수의 첫 종려주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를 향하고 있는데 세상은 보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상을 위해 죽을 것을 생각하며 예루살렘을 향해 무거운 걸음을 떼고 있는데 그를 둘러싼 세상은 왜 그렇게 더디 오냐며 그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철저한 동상이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했기에 슬프지만은 않았을 그의 종려주일, 하지만 그를 환영하는 인파가 몰리면 몰릴 수록, 사람들이 그를 보며 열광을 하면 할수록 그의 고독은 깊어만 갔을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의 금권선거 문제로 말들이 많습니다. 언제부터 그런 자리가 뒷돈을 줘가며 되고 싶은 자리가 되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부정한 방법을 써가며 그 자리에 오르고 싶도록 했을까요? 십자가였을까요? 아니면 보좌였을까요? 한국기독교총연합의 대표회장이란 사람이 변명이라고 내놓은 말은 더욱 우리를 당황케 합니다. ‘그래도 이번 선거가 요 근래의 선거 중 가장 깨끗한 선거였다…’ 회개를 모르는 한국교회의 물질만능주의, 십자가를 구하지 아니하고 영광을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 것임을 잘 보여주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또 한번의 종려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마음을 채우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십자가입니까? 아니면 영광입니까? 남은 믿음의 여정을 통해 십자가를 생각하고 또 그분의 뒤를 따라갈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