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차이는 타민족과의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문화 차이는 같은 민족인 우리 안에서 일어나고,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을 하부 문화라고 부른다. 한국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세대차를 많이 논하기 시작했다. 10년을 주기로 세대를 논하고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 유행한 단어들 중에는 '이태백','삼팔선','사오정','오륙도' 등이 있었는데 이것은 경제적 어려움에서 직장을 잃거나 얻지 못한 사람들을 두고 한 말이지만, 문화적 측면에서 세대에 따른 차이를 말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는 교회 안에 청년들이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탄을 한다. 청년들이 교회에 등을 돌렸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서구 교회들이 청년들을 잃더니 문을 닫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시아의 교회들은 젊다. 싱가포르 경우는 교회 분위기가 청년들에게 맞아 부담없이 교회에서 즐기는 모습이 부럽기만 하다. 청년이 있어야 교회는 살아 있고 미래에 대한 소망을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일세들은 우리 교회가 왜 이렇게 빨리 노령화되고 있는지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청년들이 왜 교회를 등지는가? 사회적 요인으로는 IT사업의 발달로 젊은이들이 환상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저들에게는 교회란 답답한 곳이라 생각될 수 있다. 편안함, 경제 제일주의, 실력 제일주의라는 시대적 가치관의 변화를 이야기할 수 있지만 더 큰 문제는 교회 안의 문화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대차를 극복하지 못한 연유라고 이해된다. 특별히 지도력이 일세 일변도로 진행되는 교회가 젊은이들은 싫은 것이다. 말하자면 침묵의 갈등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교회 분위기는 50대 60대 70대의 문화라고 볼 수 있다. 이 문화는 역사적으로 많은 수모를 당했고, 피해의식을 가진 권위주의 시대이다. 한국 교회가 변화하려면 이러한 리더십에서 벗어나 젊은이들을 포용할 수 있고, 저들이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아니라 문화를 창출해 내는 곳이어야 한다. 그리고 저들과 놀아줄 수 있는 지도자들이 나와야 한다.

성경 번역만 보아도 그렇다. 누가 말하기를 한글개역판은 박물관에나 보관해야 할 성경이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을 배려했다면 성경 번역을 벌써 완성이 되었어야 할 것이다.

미국의 한인교회들은 많은 부모가 소위 1.5세 또는 2세의 자녀들을 두고 있다. 저들의 생각은 부모의 생각과 다르다. 부모는 자신들의 습관과 문화 속에서 행동하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의 자녀들은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 사이에서 갈등을 많이 겪을 뿐만 아니라 부모와 대화하기를 꺼린다. 저들이 한국 문화와 미국 문화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조화를 이룰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불행하게도 그렇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본다. 부모와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도 부모가 선교적 마인드가 있다면 쉽게 해결될 것이다.

먼저 부모는 자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고 자녀를 만나면 문제는 예상외로 쉽게 풀린다. 그들을 대할 때 서투른 영어라도 해서 대화의 기회를 자주 마련하고, 때로는 손을 잡아 주고 포옹도 해주어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면 1세와 2세간의 문화 격차를 현저히 줄일 수 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부모의 사랑과 1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표현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자녀와 마음의 대화만 이루어진다면 그들은 부모나 1세들을 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적 유산을 받아들일 각오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선교의 마음은 결국 세대간의 격차를 좁혀 주는 견인차의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의 2세들은 언어와 문화, 국제적 감각 면에서 탁월하다. 한국에서 자란 젊은이들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있는 그룹이다. 그들을 선교적 마인드를 가지고 선교지에 배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자원이 없다고 하겠다. 1세의 관심을 한국과 서양의 좋은 점을 잘 조화시킬 수 있도록 안내해 그들이 창조하는 제삼의 문화는 정말 다른 사람이 부러워하는 문화로 창출하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