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느 날 나의 아파트에 Mr. Lee라는 한 손님이 찾아 왔습니다. 나이도 거의 비슷하고 워낙에 사람이 성실하고 좋아서 서로 좋아하며 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나의 아파트 창문을 살펴보더니만 “목사님, 창에 방충망이 없네요. 제가 마침 그와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목사님 창문에 방충망을 해 드리겠습니다”고 일방적인 제안을 하더니만, 집에 머무는 시간도 별로 안 되고 남의 아파트에 그와 같은 수고를 할 것 없다고 극구 만류하는데도 며칠 후 깨끗이 방충만을 창문마다 부착해 주었습니다.
너무나도 그 성의가 고맙고 생각이 아름다워 더욱 가슴에 은혜를 입고 지나던 중 하루는 또 20대의 젊은 부부를 데리고 찾아왔습니다. 한국에서 UW에 국비유학으로 온 조카 내외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패스한 27살 동갑내기 엘리트 부부였습니다. 그는 그런 장래가 창창한 잘난 조카가 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녀간 1주일이 지난 토요일 밤, 심방을 하고 있던 나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조카에게 운전을 가르치기 위해 조용한 주말에 한적한 교외로 나갔는데 그 조카의 운전 미숙으로 자동차가 전복되었고 싯벨트를 매지 않았던 그는 즉석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그 조카 부부는 싯벨트를 착용하였기에 부상하나 없이 멀쩡하였습니다.
그렇게도 허망하게 사랑하던 사람의 장례를 손수 집례 해야만 했던 그 당시의 그 처절함은 지금도 가슴이 메어 올만큼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때 그 교통사고가 난 직후 그분 조카의 부인이 배가 아프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27세밖에 되지 않은 그 젊은 부인은 위암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6개월 만에 그 부인 또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내일은 알 수가 없다지만 이렇게도 허무하게 귀한 사람들을 짧은 시간 안에 잃어버렸던 충격은 지금도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이 땅에 태어났으면 가야 한다는 이 엄숙한 사실이 단 한 사람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앞에 엄청난 시간이 남아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먼저 준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준비란 인간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에 왔다가 떠나야 할 때가 온다는 사실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우리는 떠나야 할 사람과의 관계 정립이 필요하게 됩니다. 원수를 맺은 체 그렇게 인간관계를 끝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을 떠난다면 또 다시 가야 할 저 세상이 있기 마련인데 거기에서 만나야 할 분은 바로 조물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을 만날 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이 세상에 머물고 있을 때 바른 관계를 정립해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그런 것은 필요 없다’고 할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이 세상에 왔고 또한 훗날 죽어야 하는 것이 기정사실이라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항변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이 땅에 오게 하시고 또한 죽게 하시는 분이 바로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종교가 있지만 우리 기독교처럼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셨고 또한 사람들을 보내시어 살게 하시고 훗날에는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서 영원히 살게 하신다는 사실을 확신 있게 기록하여 수천 년을 전해 오는 종교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직 기독교만이 그렇게 놀라운 사실들을 전용물처럼 사용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서기 2002년이 예수님 탄생 이후 역사임을 AD(Anno Domini-In the year of our Lord의 약자)라는 약어로 공통적으로 쓰는 것과 같이 이미 기독교의 핵심이신 예수님이 인류 역사의 주인이 되어 계심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없다’느니 ‘나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등의 말은 숨은 쉬면서도 공기는 없다고 주장하는 같은 억지에 불과한 것입니다.
좀 더 빨리 가느냐 혹은 좀 더 오래 사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우리 모두는 다 한결 같이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존재들입니다. 이는 조물주이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알 수 없는 우리들의 내일을 지혜롭게 대비하고 준비하여 세상을 떠날 때 뒤돌아보고 후회하지 않는 그런 멋진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길이 진정으로 무엇인지는 현명한 우리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할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바로 이것을 한번 생각하고 찾아보면서 인생의 현실을 직시해 보는 여유를 가져 봄이 어떨는지요?
[최인근 컬럼] 내일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삶이 아름다운 사람(4)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