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목회자 월례회에 참여 하였는데 그 모임에 설교를 맡으신 목사님께서 자신의 목회 철학을 말씀하시는 도중 이민교회와 미국교회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이민교회는 아기를 돌보는(Babe Sitting)것 같은 것이며 미국교회는 상담(Counseling)”하다가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이 두가지는 상이하게 다르게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본다면 같은 것이라 생각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이민교회 교인이든지 미국교회 교인이든지 상관없이 어느 누구나 사랑과 관심 그리고 나를 이해 해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모습이 사실상 사랑하는 교인들에게 말씀으로 먹이는 목사도 누군가로부터 사랑과 관심 그리고 위로함을 받으려 한다. 20년 가까이 목회를 하면서 사역에서 가장 힘들었던 일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갈때이지만 그 보다 더 힘든일은 사역하는 중에 목사 자신이 실수한 것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때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위로 받기를 바라는데 도리어 실수한 것에 대해 아내로 부터 지적을 받을 때면 교인들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아내에게 쏟아 붓는 것이며 그것을 그냥 받아야만 하는 사모를 바라볼때면 남편의 사역을 돕는 아내가 처량하게 보이고 양떼를 먹이는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누군가 아파할때 그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아파하는 자에게 책망하기 보다는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실수를 한 사람이 그 잘못된 요인이 무엇인지를 지적하는 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자신의 약한 부분으로 인해 동일하게 실수하는 부분에 대해 안타까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고 지적을 당한다면 그것은 “불난집에 부채질을 하여 불꽃이 더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사람들의 입술로 누군가에게 희망과 실망을 줄 수있다면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시기와 상황을 적절하게 판단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에 대한 중요성을 최근 어느 한 목사님이 일본의 북서쪽 해안에서 일어난 진도 9.0의 지진과 그 여파로 엄청난 해일 그것도 20미터 정도되는 해일로 인하여 일본의 미야기현,이와테,후쿠시마등 도호쿠 지역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사망과 실종이 4만명이나 이를 수도 있다는 소식과 여러곳에서는 수십만명이 대피하였고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방사능이 누출되어 재난을 당한 사람과 대피한 사람들이 63만명에 이른 일본인들의 처참한 현실을 보고 일본의 지진과 이로인한 쓰나미의 원인은 “일본인이 하나님을 멀리 한 탓”,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하여 많은 사람들을 분노하게 한 것이다. 상대가 아파할때 그리고 일어날 기력도 없이 고통받는자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못할 뿐 아니라 지금은 고통 받는 자들을 위해 “오늘은 힘이들어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질거예요”라는 위로와 사랑의 권면이 필요한 것이다. 시대의 경고를 알리는 진정한 예언자(Prophet)라면 사건의 결과를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에 열국에게 경고와 각성운동을 일으키는 것이라 믿는다.

인간의 질병도 노력하면 좀더 나아지고 고쳐질 수 있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노력과는 상관없는 선천적으로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유전적인 질병들이 있으며 나이가 들거나 성별의 차이에 따라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를 들자면 인간의 인체에 심장병에 관한 것인데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고혈압, 콜레스트롤, 중성지방과다,당뇨로 인해 심장마비와 뇌출혈등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고혈압과 콜레스트롤 방지를 위해 사람들이 평생동안 피어왔던 담배를 끊고 일주일에 3-4번 운동을 하고 짠 음식들을 피하고 충분히 수면을 하면 스트레스를 덜 받으려고 노력을 하면 건강을 유지 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것은 선천적으로 조상으로부터 주어지는 고혈압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 없던 혈압도 주어지는 일들은 분명 약을 먹고 정상치수의 혈압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 목적은 심장마비와 뇌 출혈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만일 이러한 기본 원리를 무시하고 자신의 건강만 자랑하면 나이와 상관없이 삶에서 예견되지 않는 건강의 큰 위협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결과를 환자가 얻게 되면 후회하고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 이었는지에 대해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을 한다. 고통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누군가 직접대면하면서 “그러니까 내말 안들어서 잘했다”하면 그것이 당사자에게 마무런 위로도 도움도 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일본대지진,쓰나미 참사 속에서도 일본인들의 침착성을 보고 미국언론에서는 “과연 일본인들의 DNA는 미국에 카트리나의 재난을 맞은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의문을 갖게 하였고 재난의 고통의 과정속에서도 자국민들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말들이 많았다. 그중 몇사람을 보면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가 한국에 감사의 표현을 한 것인데 “일본 지진때 제일 먼저 한국이 도와주러 왔다.” “한국 사람들에게 한명 한명씩 감사하고 싶다.” “진신으로 감사해여요” 그리고 일본의 사카에(Sakae)라는 한 여성은 “일본에 큰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죄많은 일본이지만,한국여러분 기도해 주세요,전철도 모두 멈추고 있습니다. 집에 돌아갈 수 없습니다. 기도해 주세요.부탁합니다” 이들의 모습은 어려운 아픔과 고난의 재앙가운데서도 일본국민들을 위로하기에 충분하며 그들이 전하는 희망의 작은 불꽃이 지구촌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의 도움을 일으키는데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성경에서 찾아 보면 욥이 자녀들과 자신의 가축과 모든 재산을 잃어 버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고백의 말이 욥기1:21절에 보면 나온다.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을실지어다.”

삶으로 주어지는 고통은 꼭 부정적인 것으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속에서도 희망이 있고 고통은 하나님이 주신 저주가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선물이라 생각하여야 한다. 얼마전에 사랑하는 한 선배 목사님으로부터 울먹이면서 자신의 아들이 뇌출혈로 혼수 상태에 있는데 어쩌면 좋으냐고 물어 봤을때 그때에는 아무런 말도 해 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선배님에게 조금은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그것은 바로 “오늘은 힘들어도 내일은 좀더 나아질거예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