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전차(Chariots of Fire)라는 영화에 보면, 주인공 에릭 리들(Eric Liddell)이 경주자들 속에 섞여서 선두를 차지하려고 달리다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트랙 안쪽 잔디 위로 구르고 맙니다. 고개를 들어 ‘다른 경주자들이 뒤돌아보지 않고 멀어져가는 모습’을 쳐다봅니다. 그 순간 카메라는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합니다. 어떻게 할까? 어차피 일어나서 달려봐야 우승은 이미 멀어졌는데, 그만 포기해버릴까? 단 1~2초가 흐르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심정의 무게감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만치 멀어져버린 경쟁자들의 무리를 혼신의 힘을 다해 쫓아가는 것을 보고 관객들은 환호했습니다. 좌절의 시련을 딛고, 결과는 그가 이겼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는 아내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가 아직 어렸고, 서로 직장 때문에 주말 부부로 살다보니, 한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여겨 그는 아내를 용서하고 다시 화해하려고 끈질지게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내는 이미 떠난 자신의 마음을 추스리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기와 남편을 버리고, 친정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 눈이 맞은 다른 남자와 재혼했습니다. 배신의 아픔과 하루아침에 엄마를 잃은 아기를 안고 친구는 오랜 시간을 힘들어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간적인 감정 극복보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왜 자신에게 이런 시련이 닥쳤는지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73편을 읽으면, 시인이 ‘나쁜 짓을 하고도 들키지 않고 잘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혼란에 빠진 내용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사람과 마음이 정결한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건만, 나는 그 확신을 잃고 넘어질 뻔했구나. 그 믿음을 버리고 미끄러질 뻔했구나. 그것은, 내가 거만한 자를 시샘하고, 악인들이 누리는 평안을 부러워했기 때문이다. (중간 생략) 이렇다면, 내가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온 것과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것이 허사라는 말인가? (중간 생략) 그러나 마침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서야, 악한 자들의 종말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세우시며, 거기에서 넘어져서 멸망에 이르게 하십니다. …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께서 이루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표준새번역).

내일이란 게 있을까? 다시 기회가 찾아올까? 이대로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무너진 사람들, 관계가 깨어진 사람들, 마귀에게 정신을 빼앗긴 사람들, 현장에서 발각되어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여자, 하나밖에 없던 아들을 잃고 하늘이 무너진 듯한 슬픔에 잠긴 사람까지. 예수님의 주특기는 이런 사람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살인자 신세로 전락하여 아무 가치도 없는 생을 살던 모세를 하나님은 재건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켜세우십니다. 늦었다고 느끼십니까? 하나님 안에서는 언제나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