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가 지진과 쓰나미로 그리고 여러 가지 재난으로 인해 여기저기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상자들이 더 늘어나고 피해도 예상 밖으로 커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이것을 재앙이라고까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머리서 TV로만 보는 우리도 이런데 한순간에 가족을 읽고 또 건강, 그리고 인생의 모든 것이 없어진 사람들의 심정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어려움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왜 어려움을 당하는지 또 똑같은 상황 속에서 어떤 이는 심한 어려움을, 어떤 이는 견딜만한 어려움을 당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고통을 받아도 당연한 사람 즉 어려움을 당해서 좋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크고 작은 어려움을 떠나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위로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때때로 어려움보다 그 원인에 더 집착 할 때가 있습니다. 어려움은 어려움이고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꼭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원인을 파학하고 예방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이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도 그러합니다.

상처가나서 피가 나는 사람은 우선 그 상처를 치료하고 피를 멈추게 하는 것이 우선이고 왜 다쳤는지는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에 물어봐도 늦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질을 하는 것은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은 우선 치료가 먼저라는 것입니다.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치료도 하지 않고 나물하기만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효과적인 예방을 위해서라도 먼저 위로하고 치료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예수님도 사랑이 먼저였습니다. 우리도 힘든 사람에게 먼저 위로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지난주에 어느 목사님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어떤 초등학생이 이런 글을 써서 화재가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내용은 이러합니다.

어머니가 있어서 좋다/ 날 이뻐해 주셔서/ 냉장고가 있어 좋다/ 나에게 먹을 걸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 좋다/ 나와 놀아 주어서/ 그런데 아버지는 왜 있는 거지?”

아버지로서 참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말을 들어서는 안 되리가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아니라 있어서 너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야합니다.

내가 살아감에 있어서 좋은 사람들이 내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좌우됩니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것들을 왜 잘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많은 시간들을 있으면 원수 같은 시간으로 보내는 것일까요? 아마도 원인이 큰 곳에 있지 아니하고 작은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큰 원인은 아마도 우리가 그냥 아무생각 없이 내뱉는 나의 말 속에서 그 큰 원인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위로를 한다고 하면서 상처만 주는 이유도 바로 사소한 말 한마디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생각의 종합표현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느끼는 나의 감정입니다. 우리는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어떤 일을 이룩함에 있어서 가장 걸림돌이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의 감정이다. 즉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일을 이룩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입니다. 남에게 위로를 잘 해주려면 자신의 감정을 잘 조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감정을 조절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또는 가족에게 행복을 주는 일입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은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따뜻한 위로의 한마디가 그 어느 것보다도 더 간절한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항상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