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때문에 받은 상처를 치유하라](Verbal Abuse: healing the hidden wound)는 책이 있습니다. (그레이스 케터만(by Grace Ketterman) 지음. 출판사(미션월드)). 저자는 이 책에서 언어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이 의외로 많으며, 그 상처가 매우 깊음을 얘기합니다. 우리에게는 어쩌면 어린 시절 들었던 한 마디 말 때문에 지금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열등감이 형성되었을 수 있습니다. “네 언니는 공부를 잘 해서 아무 걱정 없는데, 너는 그렇지 못하니 정말로 걱정이다 걱정이야. 도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언어폭력이란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여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는 행위입니다. 또한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견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고 해도 언어폭력의 피해는 인생 전체를 틀어지게 할만큼 심각합니다. 어느 매춘부가 고백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커서 가출하게 되기까지 아버지로부터 이유없는 욕설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저보고 창녀같은 년이라고 욕했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온 제가 지금 매춘부로 지내고 있으니 결국 아버지의 말대로 된 셈이지요.”
저자는 언어폭력의 희생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남들이 함부로 내뱉은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해소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사무친 원한과 분노, 쓰라림을 어찌 하루 아침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평소 점잖거나 좋은 사람인 척하다가도, 무슨 일로 화가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폭언을 일삼습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직장과 학교, 교회 등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이같이 횡포가 자행됩니다.
심지어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혹은 목장모임이라는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비방과 험담과 불평을 쏟아낼 때도 있습니다.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존중하는 서구문화와 달리 집단문화가 발달한 일본이나 한국인의 문화에는 나와 다른 점을 그저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주기보다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기분나쁘다.’는 식의 뒤틀린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전체주의 사회의 축소판인 군사문화의 잔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기상하여, 똑같이 걸어야 하는 군대문화는 인간을 다양성보다는 통일성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근거없는 루머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택한 사례를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합니다. 인간만 그럴까요? 하나님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듣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민14:28-29)
우리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로 작정하십시다.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을 솔직히 시인합시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겸손하게 간구합시다. 날마다 기도하며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눕시다. 상대방을 용서하거나 상대방에게 사과합시다. 그 누구보다 심한 언어폭력을 당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어폭력이란 상대방의 인격을 모독하여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는 행위입니다. 또한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견에 대해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행위입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고 해도 언어폭력의 피해는 인생 전체를 틀어지게 할만큼 심각합니다. 어느 매춘부가 고백합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커서 가출하게 되기까지 아버지로부터 이유없는 욕설을 들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화가 나면 저보고 창녀같은 년이라고 욕했습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나온 제가 지금 매춘부로 지내고 있으니 결국 아버지의 말대로 된 셈이지요.”
저자는 언어폭력의 희생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남들이 함부로 내뱉은 말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해소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사무친 원한과 분노, 쓰라림을 어찌 하루 아침에 훌훌 털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평소 점잖거나 좋은 사람인 척하다가도, 무슨 일로 화가 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폭언을 일삼습니다.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직장과 학교, 교회 등 인간이 집단을 이루어 활동하는 모든 영역에서 이같이 횡포가 자행됩니다.
심지어 기도회라는 이름으로, 혹은 목장모임이라는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비방과 험담과 불평을 쏟아낼 때도 있습니다. 사생활을 보호해주고 존중하는 서구문화와 달리 집단문화가 발달한 일본이나 한국인의 문화에는 나와 다른 점을 그저 다른 것이라고 인정해주기보다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기분나쁘다.’는 식의 뒤틀린 의식이 깔려 있습니다.
전체주의 사회의 축소판인 군사문화의 잔재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시간에 기상하여, 똑같이 걸어야 하는 군대문화는 인간을 다양성보다는 통일성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유명 연예인들이 근거없는 루머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을 택한 사례를 우리는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합니다. 인간만 그럴까요? 하나님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평과 불만의 소리를 듣고 분노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너희 시체가 이 광야에 엎드러질 것이라.”(민14:28-29)
우리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어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기로 작정하십시다. 우리 스스로의 문제점을 솔직히 시인합시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겸손하게 간구합시다. 날마다 기도하며 주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눕시다. 상대방을 용서하거나 상대방에게 사과합시다. 그 누구보다 심한 언어폭력을 당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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