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한 주간에 온 세상의 화제는 온통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에 관한 자연 재해들이었다. 지진의 강도가 무려 9.0에 달했다는 이번 지진은 가히 전대미문의 자연재해가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다 거대한 쓰나미의 강타로 인한 일본 해변 도시의 철저한 붕괴는 가히 일본 열도를 공황으로 빠뜨린 극도의 두려움이었다.

시편 46편에도 보면 시편 기자가 경험한 근본적인 두려움에서 대해 언급하고 있다. 땅이 변화하고, 산이 흔들리는 두려움이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지진의 경험이었다. 팔레스타인 내지에 살던 시편 기자가 아마도 처음 지진을 경험한 후 그런 두려움을 기록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인간은 이러한 근본적인 두려움 앞에 생의 뿌리가 흔들리는 극도의 공포감이 표출되게 된다.

나 자신도 엘에이에서 노스리지 지진을 겪었다. 잠을 자는 가운데 웬지 이전에 한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거대한 출렁임이 찾아왔다. 깨어나 보니 집 전체가 마치 파도를 타듯이 휘청 거렸다. 순간 이것이 지진이로나 하는 직감이 찾아왔다. 아내를 깨어 황급히 1층으로 내려가 문 모서리로 대피하였다. 온 세상의 지각이 흔들리며, 지반이 엇갈리며 기괴한 소리로 가득찼다. 새벽 기도를 인도하는데 계속해서 강도 높은 여진이 때렸다. 그 때마다 ‘오 하나님’ 이라고 외치며 기도로 매달렸던 기억이 새롭다.

그 사건이 있은 후 나는 구약 성경의 예언서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 이라는 표현이 진정 내 마음에 와 닿았다. 마태복음에 나타나는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라는 표현은 실감나는 예언적 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는 점점 무언가 근본이 흔들리는 위기들이 가중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기상이변은 지구촌이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자연 재해이다. 폭설, 허리케인, 지진, 쓰나미, 가뭄 등에 이르기까지 지난날에는 경험하지 못한 재난들이 엄청난 강도를 가지고 세상을 위협하고 있다. 아울러 기상 이변으로 인한 격심한 식량 위기들도 지구촌에 등장하고 있다. 아직도 상존하고 있는 경제 위기, 테러의 위협, 아울러 중동에서의 민주화 바람 등이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하게 세상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근본적인 흔들림 속에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지난날의 믿음으로는 살아 갈 수 없는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믿음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여 강인한 믿음으로 훈련 될 때만이 이러한 세상의 위협들 가운데 믿음의 백성들로 평강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다. 믿음이란 안일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서 형성된다.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이러한 시대일수록 더욱 더 보석과 같은 빛나는 믿음의 여정 길을 걷기로 결단하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라고 시편 기자는 우리를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초청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시며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말씀이 우리에게 충일한 믿음이 솟아나도록 도전한다. 환난과 가장 절망의 시간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한다. 가장 적합한 시간에 찾아오는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말한다. 성경은 바로 이러한 숱한 은혜의 경험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믿음으로 고백하는 대서사시이다.

오늘날 이 땅의 환경과 보이는 재해만을 보면 우리들은 절망하고 우울증에 빠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에 나타나는 숱한 위기와 재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그 하나님을 의지할 때 우리에게 동일한 구원이 찾아오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저 강력한 지진과 쓰나미, 원전 방사선의 누출로 패닉 상태에 빠진 일본인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 싶다. 매일 기도로써 저들의 안전을 간구하고 있다. 참을성 많고 경이적인 질서의식으로 충만한 일본 국민들의 국민성에 존경을 보내면서 이 기회에 하나님을 찾는 회복 운동이 저 땅에 시작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솟구친다.

하나님이여, 저 일본을 긍휼히 여기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