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나름의 이단을 창설하려고 노력했는데, 거기에 마지막 손질을 가했을 때 그것이 바로 정통신앙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역설의 거장’ G.K.체스터턴의 이 책 제목은 『정통(상상북스)』이다. 책은 『오소독시(Orthodoxy)』라는 이름으로 이미 일반 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체스터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어령 박사나 그를 영적인 아버지로 우러러봤다는 C.S.루이스처럼 무신론자에서 기독교로 귀의한 뒤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가 됐다. C.S.루이스는 “강한 무신론자로 남고 싶은 젊은이는 그의 글을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역설적인 말로 그를 평가한다.
필립 얀시는 “모더니즘, 공산주의, 파시즘, 평화주의, 결정론, 다윈주의, 우생학 등이 크게 부상하던 20세기 초 이 사상들을 두루 살펴본 그는 그런 강력한 세력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요새가 바로 기독교임을 발견하고 거기에 점점 더 끌리는 경험을 했다”며 “마침내 그는 기독교 신앙을 영접했는데, 단지 문명의 보루로서만이 아니라 세계에 관한 가장 심오한 진리로 받아들였고, 이른바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공공연하게 로마 가톨릭 교회로 전향하는 절차를 밟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책은 저자가 앞서 집필했던 『이단(Heretics)』의 자매편이다. 비판만 있지 대안이 될 만한 철학을 내놓지 못했다는 다수 비평가들에 대한 대답의 성격으로 그의 나이 겨우 34세(1908년)에 쓴 글이다. 체스터턴은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믿을 만한 내용인지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그 신앙을 받아들이고 믿게 됐는지 진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홀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모든 기독교 세계의 지지를 받는 우스꽝스러운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말하기 죄송스럽지만 나는 독창적인 인물이 되려고 애썼는데, 알고 보니 기존의 문명화된 종교 전통의 엉성한 복사판을 나 홀로 창작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저자는 ‘어떤 잉글랜드 요트맨이 항해를 시작했다가 경로를 약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잉글랜드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남쪽 바다의 새로운 섬으로 착각한 이야기’처럼 가장 가까운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을 마침내 무정부주의 클럽이나 바빌로니아 신전에서 찾게 됐다고 자신의 방랑기를 표현한다.
추천사를 쓴 강영안 교수(서강대)는 “무엇보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며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읽되 반복해서 읽고 생각하면서 읽기를 권하고, 시간을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되, 다시 한 번, 또 한 번 읽게 되면 체스터턴의 이야기가 무사의 칼처럼 눈부시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구수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의 말처럼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 책이다. “기독교는 논리적인 진리를 추론할 뿐 아니라, 갑자기 그것이 비논리적이 될 때는 말하자면 비논리적인 진리를 발견했던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책은 꼼꼼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역설과 비유, 풍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사람이 두 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는 자명한 추론은 (모든 현대주의자들이 그렇다고 울부짖을지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는) 단순한 진리에 대해서는 단순하지만, 미묘한 진리는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역설의 거장’ G.K.체스터턴의 이 책 제목은 『정통(상상북스)』이다. 책은 『오소독시(Orthodoxy)』라는 이름으로 이미 일반 출판사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체스터턴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어령 박사나 그를 영적인 아버지로 우러러봤다는 C.S.루이스처럼 무신론자에서 기독교로 귀의한 뒤 탁월한 기독교 변증가가 됐다. C.S.루이스는 “강한 무신론자로 남고 싶은 젊은이는 그의 글을 아무리 경계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역설적인 말로 그를 평가한다.
필립 얀시는 “모더니즘, 공산주의, 파시즘, 평화주의, 결정론, 다윈주의, 우생학 등이 크게 부상하던 20세기 초 이 사상들을 두루 살펴본 그는 그런 강력한 세력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요새가 바로 기독교임을 발견하고 거기에 점점 더 끌리는 경험을 했다”며 “마침내 그는 기독교 신앙을 영접했는데, 단지 문명의 보루로서만이 아니라 세계에 관한 가장 심오한 진리로 받아들였고, 이른바 프로테스탄트 국가에서 공공연하게 로마 가톨릭 교회로 전향하는 절차를 밟기도 했다”고 전한다.
이 책은 저자가 앞서 집필했던 『이단(Heretics)』의 자매편이다. 비판만 있지 대안이 될 만한 철학을 내놓지 못했다는 다수 비평가들에 대한 대답의 성격으로 그의 나이 겨우 34세(1908년)에 쓴 글이다. 체스터턴은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믿을 만한 내용인지를 설명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어떻게 그 신앙을 받아들이고 믿게 됐는지 진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홀로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모든 기독교 세계의 지지를 받는 우스꽝스러운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다. 말하기 죄송스럽지만 나는 독창적인 인물이 되려고 애썼는데, 알고 보니 기존의 문명화된 종교 전통의 엉성한 복사판을 나 홀로 창작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다.”
저자는 ‘어떤 잉글랜드 요트맨이 항해를 시작했다가 경로를 약간 잘못 계산하는 바람에 잉글랜드를 발견했는데, 그것을 남쪽 바다의 새로운 섬으로 착각한 이야기’처럼 가장 가까운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을 마침내 무정부주의 클럽이나 바빌로니아 신전에서 찾게 됐다고 자신의 방랑기를 표현한다.
추천사를 쓴 강영안 교수(서강대)는 “무엇보다 이 책은 천천히 읽어야 할 책”이라며 “한 장 한 장을 천천히 읽되 반복해서 읽고 생각하면서 읽기를 권하고, 시간을 두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되, 다시 한 번, 또 한 번 읽게 되면 체스터턴의 이야기가 무사의 칼처럼 눈부시고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구수함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의 말처럼 술술 넘어가지는 않는 책이다. “기독교는 논리적인 진리를 추론할 뿐 아니라, 갑자기 그것이 비논리적이 될 때는 말하자면 비논리적인 진리를 발견했던 것”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책은 꼼꼼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역설과 비유, 풍자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사람이 두 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두 개의 심장을 갖고 있다는 자명한 추론은 (모든 현대주의자들이 그렇다고 울부짖을지라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기독교는) 단순한 진리에 대해서는 단순하지만, 미묘한 진리는 고집스럽게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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