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커피 기구는 “전세계에서 물 다음으로 두번째로 많이 마시는 음용수가 커피”라고 발표했다. 홍차, 녹차, 코코아, 포도주, 맥주, 소다수, 이온 음료들도 마시지만 도무지 커피를 능가하진 못한다.

세계 커피 애호가가 하루에 마시는 양은 자그만치 25억잔이나 된다. 매년 700만톤 이상의 원두가 생산되어 석유 다음으로 많은 거래를 이룬다. 관련 사업에 2500만명이 종사하고 있다니 어마어마한 거대산업이 아닐 수 없다.

1582년 유럽인 의사 레온하르트 라우볼프는 동방의 카우베 알레프에서 처음 커피를 접했다. 그 강렬한 첫 인상을 ‘동방여행’이란 책에 기술하고 있다.

“세상 그 무엇보다 더 좋은 음료가 아랍에 있는데 카우베(Café)라고 한다. 마치 잉크처럼 검고, 만성병, 특히 위장병에 좋다”라고 찬사를 기록했다.

커피는 에티오피아 고원지대가 본산지다. 에티오피아가 예멘을 점령했을 당시, 커피 생장에 천혜의 환경임을 알고 옮겨 심었다. 체리처럼 빨갛게 원두가 익고, 크고 실한 것이 최상품인데 신비한 5가지 맛이 골고루 섞여있다.

아라비카 커피가 예멘의 모카 항구에서 유럽인들의 고상한 문화에 기여하고자 배로 실려 나가게 된 것이 모카 커피가 되었다.

커피를 처음 음용한 기록은 13세기 이슬람 신비주의파 중 하나인 수피파 수도승이 마시면서 부터다. 주지 승이 마셔보니 명상하고 도를 닥는데 상당한 효능이 있음을 알게 됐다. 저녁 늦은시간까지 계속되는 수행에 졸며 힘들어하는 수도승들에게 항아리 가득히 끓여 마시도록 권했다.

코란이 엄격히 술을 금하고 있던차라, 무슬림에겐 무엇인가 마실 음료가 필요했다. 커피의 매혹적인 맛이 사원의 담장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성지순례에 참여한 무슬림을 통하여 오스만 투르크 제국 곳곳에 자연스런 확산을 가져왔다.

“커피 한잔에 40년의 추억이 담겨 있다”는 터키 속담이 있다.
동서양의 교착점인 이스탄불의 카페엔 지금도 전래되고 있는 다도가 있다.

로스팅한 원두를 밀가루처럼 미세하게 분쇄한다음, 체즈베(끓이는 통)에 물과 함께 담아 불에서 끓여낸다. 비등점에 도달하자마자 거품이 급속히 올라오면 이브릭(커피 주전자)에 옮긴 후, 고급스런 도자기 잔에 담아 손님을 접대하는 멋진 풍습이다. 기호에 따라 설탕을 넣기도 하지만, 미네랄과 염분을 고려하여 약간의 소금을 넣은 짭쪼름 커피도 맛 볼 수 있다.

231대 교황이었던 클레멘트 8세때 일화. 오스만 제국의 음료인 커피가 유럽에 상륙하게되자, 대다수의 성직자들이 교황에게 커피 금지 청원을 올렸다.

“어찌 이교도의 사악한 커피를 기독교도가 마실 수 있겠느뇨?”

커피를 시음한 교황 왈,
“감미롭도다. 커피에 세례를 베풀어 악마를 바보로 만든 후 널리 마시도록 하라”.
이후 유럽은 커피를 가장 애용하는 대륙이 되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싼 마르꼬스는 동방 무역의 주요 거점이었다.
이슬람의 커피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지 않고, 꿀을 넣어 달콤하게, 우유, 생크림을 넣어 부드럽고 깊은 맛을 창출했다.

이후 커피는 더이상 귀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서민들까지 즐기는 음료가 되었고, 카페는 문화 공간으로, 담론하는 현장으로 발전하여 민주주의 정착에 크게 공헌 하였다.

이탈리아는 마끼나 데 에스프레소(커피 기계)를 만들어 커피 문화 강국으로 부상한다.
볶은 생두를 분쇄한 후, 뜨거운 물을 통과할 때 맛과 향취가 번지는데, 입자가 거칠면 필터를 천천히 통과하게 되어 쓴맛, 불쾌한 떫은 맛도 함께 배어나온다.

최상의 커피 향취를 위해 발명된 것이 에스프레소 방식이다. 원두를 밀가루처럼 곱게 간다음, 뜨거운 수증기로 순식간에 복합적인 커피 맛을 추출한 것으로 유럽과 중남미에서 널리 애호하고 있다.

한국에 커피가 들어 온 것이 1896년이다.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 했을 당시 처음 음용하신 후, 세자와 함께 마니아가 되셨다. 한국이 아시아 국가중 제2위 커피 소비국가가 됐다.

후레쉬한 에스프레소 한잔에 따끈한 뻥지 께조(치즈 빵) 한조각 먹던 쌍파울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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