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가 주님을 따르는 길은 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사단은 “세상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예수님을 유혹했지만 예수님을 거부하셨다. 명예와 힘을 통한 사단의 유혹은 그 때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1세기 이후 교회는 힘의 유혹 앞에 너무 쉽게 무너졌다. 제왕처럼 군림하는 것도 시녀처럼 아부하는 것도 교회에 어울리는 모습은 아니다.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님도 오래 전에 포기한 방법이다. 노아 홍수 사건이나 광야 40년에 걸쳐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죽었던 사실을 생각해보자.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빗나간 자식들을 결국엔 죽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힘을 포기하고 사랑으로 섬기는 길을 택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비워 종의 모습으로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셨다.

Sukuk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면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고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라는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취지는 동감하지만 종교적 이유로 대통령 하야 운동을 펴겠다는 주장은 교회가 힘의 논리로 대항한다는 오해 받을 여지가 있다. 발언자가 기독교와 자신에게 무시당하지 않을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더욱 적절한 것 같지 않다. 이런 식의 대응은 선교에도 유리할 것 같지 않다.

교세가 커지고 유명해지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힘에 의존하기 쉬울 것이다. 힘의 논리를 앞세워 오만해진 모습은 주님을 따르는 제자상이 아니다. 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힘과 권력을 복음선포의 수단으로 삼고 싶은 유혹을 받아왔다. 실제로 교회가 세속적 권력을 행사하거나 그 권력에 시녀 노릇을 한적도 없지 않다. 십자군 전쟁이나 히틀러 치하의 독일교회, 군부독재아래 한국교회가 그랬었다.

힘을 가진 자는 섬기는 자보다는 지배하는 자가 되기 쉽다. 그것이 힘의 속성이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어디나 파워게임이 벌어진다. 교회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교회분열의 주된 원인이 알고 보면 주도권 다툼으로 생긴다. 주님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은 기득권을 잃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힘으로 대적하기보다 사랑으로 섬기며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