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고요한 아침’에서 깨어나 ‘부산한 한 낮의 나라’로 변해버린 한국에서 이 칼럼을 쓰고 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뵈러 온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지난여름부터 휴가를 미루고 미뤄 왔습니다. 잘 도착하여 건강하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습니다. 벌써 여러분이 그립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얼마나 마음 깊이 품고 있는지를 새삼 깨닫습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모든 것을 부목사님들에게 맡기고 신경을 끊으려 했는데, 성인 신앙 교육을 맡은 목사님께서 ‘꼭’ 칼럼을 써 달라고 부탁하셔서 몇 자 적어 보냅니다.

우리 교회 교우 중 틀을 벗어나 생각하는(out-of-the-box thoughts) 것에 뛰어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제게 던진 질문 중 하나입니다. “모든 교육에는 입학이 있고 졸업이 있는데, 왜 교회의 기독교 교육에는 졸업이 없습니까?” 정말, 한 번도 생각해 본 일이 없는 질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두고 생각하면서 기독교 교육이 다른 교육과 어떻게 다른지를 따져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는 교육은 단계에 따라 정해진 진도가 있고, 교육의 과정이 지식 전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지식이라는 것은 어느 기간 동안 교육하면 습득하고 졸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교육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가는 것이며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이 되기 위한 공부에는 졸업이 없듯,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가는 기독교 교육에는 졸업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그러한데, 스스로 기간을 정하여 졸업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뉴저지에서 백인 교회를 섬기면서, 많은 이들이 자녀들의 세례와 견신례(baptism and confirmation)를 졸업식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예식을 거친 다음에는 교회에서 증발해 버립니다. 때로는 부모까지도 함께 사라집니다. 한인 교회 교인들은 기독교 교육이 어린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미국 교회 전통에서 성인을 위한 ‘주일한교’(Sunday School)도 존재하는데, 한국 교회 전통에서 주일학교는 어린이를 위한 것으로만 인식되어 있습니다.

영어 속담에 ‘No Disciplines, No Disciples!'라는 것이 있습니다. 훈련이 없이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감동으로 인해 저절로 생기기도 하지만, 그 믿음이 삶 속에 널리 그리고 깊이 배어들어 변화가 일어나게 하려면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달라스 윌라드가 말한 대로 우리의 신앙은 ’우연의 종교‘(by-accident-religion)가 되어 버렸습니다. 무심코 “교회를 오가다 보면 뭔가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고‘는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같은 열망을 공유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연구하고 서로 돕는 훈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3월부터 시작되는 성인 신앙 교육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희망을 위해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잘 했다, 싶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2월 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