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제자로서 교회를 섬기는 일꾼이 되려면 종의 도리부터 몸에 익혀야 한다. 종의 마인드를 가지지 않고 종이 해야 할 일을 하기는 쉽지 않다. 예수님은 믿음을 더 달라는 사도들에게 ‘종의 비유’를 말씀하셨다. 뜻 밖의 반응이다. 믿음을 더 달라는 간청과 종의 비유가 무슨 상관인가 성경은 문맥을 통해서 봐야 한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점에서 제자들에게 더 필요한 것은 종의 도리라고 생각하신 듯하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이런 뜻이 담겨있다. “너희는 지금 믿음이 부족한 게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구나. 그러나 내 생각엔 너희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너희 생각에 믿음이 부족해서 일을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해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뽕나무에게 명하여 ‘뿌리 채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이런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하더라도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지금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종의 도리를 깨닫는 것이다”.

어떤 종이 아침 일찍 밭에 나가 종일 일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종도 사람이니 수고했다는 말도 듣고 누가 차려 주는 밥도 먹고 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종은 그럴 수 없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인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에는 곁에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 주인은 종에게 고맙다는 말도 사례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종은 불평도 원망도 하지 않는다. 종은 마땅히 자기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이런 종의 자세를 하루 빨리 몸에 익혀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주님을 섬기는 일꾼들은 무엇보다 이런 종의 도리를 몸에 익혀야 한다. 종이 되지 못한 사람이 종의 일을 하게 되면 불만이 터져나올 수 밖에 없다. 열심히 일했는데 수고했다 말도 감사하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잘했다 못했다 책망듣기 십상이다. 열심히 해도 알아주지도 않고 이득을 보는 것도 없고 그만 두고 싶을지도 모른다. 아직도 내가 주인처럼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런 감정이 올라온다. 종이 되어야 종의 일도 감사하게 된다.

종은 일을 가려서 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시키는 데로 하는 사람이다. 하늘에 있는 두 동시에 임무를 부여 받았다. 한 천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나라에 가서 통치하라는 명을 받았고, 다른 천사는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마을에 가서 그 거리를 청소하라는 것이었다. 두 천사는 다른 천사에게는 어떤 일이 주어졌는지 모른다. 각자 자기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도록 지시를 받았을 뿐이다.

가치는 자리나 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것이 누구를 위한 일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변호사가 조폭을 위해 일하면 그 일은 범죄행위에 가깝다. 그러나 힘없는 억울한 사람들의 인권을 위해 일한다면 가치 있는 일이 된다. 주인을 섬기는 종의 가치는 일의 종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지시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가장 위대한 나라에 가서 통치하는 것과 가장 더러운 마을에 가서 청소하는 것은 둘 다 주인의 뜻을 받들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가 있다. 주인의 필요에 따라서 이 종에게는 이 일을 시키고 저 종에게는 저 일을 시킨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