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침체’라고 불리워지는 2007-2009년 금융위기의 원인을 조사하고 대책을 강구하는 자료를 정리하기 위하여 ‘금융위기조사위원회’(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가 조직되었고 지난 2년동안 수백만페이지의 문서심리, 700여명이상의 증인심문, 19일에 달하는 공청회를 통하여 얻은 결론을 662쪽의 보고서로 2011년 1월에 발표하였습니다.
이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수조달러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해야 했고,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일자리와 저축과 집을 잃어 버려야 하는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가져왔고 아직도 그 고통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금융위기조사보고서는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2차대전이후 최악의 위기를 결과하였고 아직도 회복하고 있는 대침체경제/금융위기의 원인과 상황을 상세하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기독인은 말 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정책결정자들에게 성서적인 교훈을 깨닫게 해 줍니다.
보고서는 ‘금융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Avoidable)'는 결론을 내리었고,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2가지를 내 놓았습니다. 하나는 경제제도적/경제정책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주체인간적/경제운영적인 측면입니다.
먼저 경제주체인간적 및 경제운영적인 원인으로 현자본주의금융시장제도를 움직이는 경제주체인 인간자체와그들의 운영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금융투자회사의 경영자들이 높은 단기이익획득을 위하여 ‘과도한 위험부담’을 모험하였고, 일반금융투자자들이나 일반소비자인 모기지수여자들도 지나친 단기이득/부의 증식을 위하여 ‘과도한 차용’을 단행한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비합리적 풍만과 동물적 정신‘(Irrational Exuberance and Animal Spirit, Robert Shiller), '차용과 몰락’(Borrowing and Collapse, Kenneth Rogoff), '세계적 추락‘(Global Crash, Nouriel Roubini)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 경제제도적/경제정책적인 원인으로 현자본주의시장경제구조가 갖고 있는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제도/정책자체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현 금융위기가 도래했다는 주장입니다.
즉 금융정책결정자인 연방준비중앙은행이 ‘너무 풍부’한 신용.금융확장정책을 수행하였고, 금융신용평가결정자인 Standard & Poor등 신용평가기관들이 ‘너무 풍부’한 신용평가를 해 주었으며, 금융규제담당자인 Security and Exchange Commission등 금융시장통제기관들이 ‘너무 풍부’한 규제완화를 해 주었던 것이 이러한 엄청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입니다.
시카고대학의 Raghuram Rajan교수는 그의 저서 “Fault Lines"에서 ‘신용증식’(Credit Growth)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명한 경제학자인 Barry Eichengreen도 ‘금본위제의 철패와 금융확산’이 금번위기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위험부담’과 ‘과도한 차용’, 그리고 경제제도가 만들어 놓은 ‘너무 풍부’한 금융확장, ‘너무 풍부’한 신용평가, ‘너무 풍부’한 규제완화에 초점을 마출 필요가 있습니다.
과도한 위험부담과 과도한 차용은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미래의 확실함에 대한 자신이라는 마음자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조금 영적인 탐색을 하여 보면 미래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관에 속하는 일인데 미래가 내가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자신, 나아가 내가 그렇게 주관할 수 있다는 자만 및 교만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만 및 교만이 엄청난 규모의 금융위기를 낳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백성의 자질을 가르치시는 산상수훈에서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머리로도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는 것은 악이라고 강조하시었습니다. 맹세는 미래의 관한 것인데 미래의 온전한 주관자인 하나님에 대한 타락적인 도전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금융제도가 마련하여 놓은 금융확장과 신용평가와 규제완화의 ‘풍부’는 세상적인 것의 풍부함이 인간생명과 삶의 전체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이라고 여기는 철학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곡식을 쌓아 두었지만 하나님이 영혼을 도로 찾아가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시면서 인생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 재물의 쌓아둠등 세상적인 것의 풍부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대한 부요함 즉 사랑의 풍부에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성서적인 금융위기극복방안을 교훈받을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 미래에 대한 자신과 자만과 교만을 떨쳐 버리고 미래는 온전히 하나님의 전적인 주관에 속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투자하고 차용하는 금융경제행위의 개혁이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금의 금융자본제도도 금융확산의 풍부, 신용평가의 풍부, 규제완화의 풍부등 세상적인 것의 풍부에만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서 가르쳐 주신 바에 따라 하나님의 것의 풍부, 즉 사랑적인 것의 풍부를 조장하는 제도와 정책의 혁신이 단행되어야 할 것이 요청됩니다. 이러한 금융경제행위의 개혁과 제도/정책의 혁신이 바로 제2의 대침체경제/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이 금융위기는 금융시장의 붕괴를 막기 위하여 수조달러에 달하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해야 했고, 수백만의 미국인들이 일자리와 저축과 집을 잃어 버려야 하는 엄청난 경제적 고통을 가져왔고 아직도 그 고통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금융위기조사보고서는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2차대전이후 최악의 위기를 결과하였고 아직도 회복하고 있는 대침체경제/금융위기의 원인과 상황을 상세하게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기독인은 말 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정책결정자들에게 성서적인 교훈을 깨닫게 해 줍니다.
보고서는 ‘금융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Avoidable)'는 결론을 내리었고,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2가지를 내 놓았습니다. 하나는 경제제도적/경제정책적인 측면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주체인간적/경제운영적인 측면입니다.
먼저 경제주체인간적 및 경제운영적인 원인으로 현자본주의금융시장제도를 움직이는 경제주체인 인간자체와그들의 운영에 문제점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금융투자회사의 경영자들이 높은 단기이익획득을 위하여 ‘과도한 위험부담’을 모험하였고, 일반금융투자자들이나 일반소비자인 모기지수여자들도 지나친 단기이득/부의 증식을 위하여 ‘과도한 차용’을 단행한 것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비합리적 풍만과 동물적 정신‘(Irrational Exuberance and Animal Spirit, Robert Shiller), '차용과 몰락’(Borrowing and Collapse, Kenneth Rogoff), '세계적 추락‘(Global Crash, Nouriel Roubini)등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 경제제도적/경제정책적인 원인으로 현자본주의시장경제구조가 갖고 있는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제도/정책자체에 문제점이 있기 때문에 현 금융위기가 도래했다는 주장입니다.
즉 금융정책결정자인 연방준비중앙은행이 ‘너무 풍부’한 신용.금융확장정책을 수행하였고, 금융신용평가결정자인 Standard & Poor등 신용평가기관들이 ‘너무 풍부’한 신용평가를 해 주었으며, 금융규제담당자인 Security and Exchange Commission등 금융시장통제기관들이 ‘너무 풍부’한 규제완화를 해 주었던 것이 이러한 엄청난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입니다.
시카고대학의 Raghuram Rajan교수는 그의 저서 “Fault Lines"에서 ‘신용증식’(Credit Growth)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유명한 경제학자인 Barry Eichengreen도 ‘금본위제의 철패와 금융확산’이 금번위기의 주요인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제주체들의 ‘과도한 위험부담’과 ‘과도한 차용’, 그리고 경제제도가 만들어 놓은 ‘너무 풍부’한 금융확장, ‘너무 풍부’한 신용평가, ‘너무 풍부’한 규제완화에 초점을 마출 필요가 있습니다.
과도한 위험부담과 과도한 차용은 미래의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미래의 확실함에 대한 자신이라는 마음자세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조금 영적인 탐색을 하여 보면 미래는 온전히 하나님의 주관에 속하는 일인데 미래가 내가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자신, 나아가 내가 그렇게 주관할 수 있다는 자만 및 교만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자만 및 교만이 엄청난 규모의 금융위기를 낳은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천국백성의 자질을 가르치시는 산상수훈에서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머리로도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는 것은 악이라고 강조하시었습니다. 맹세는 미래의 관한 것인데 미래의 온전한 주관자인 하나님에 대한 타락적인 도전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미국의 경제금융제도가 마련하여 놓은 금융확장과 신용평가와 규제완화의 ‘풍부’는 세상적인 것의 풍부함이 인간생명과 삶의 전체를 해결하는 궁극적인 방법이라고 여기는 철학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곡식을 쌓아 두었지만 하나님이 영혼을 도로 찾아가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드시면서 인생의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 재물의 쌓아둠등 세상적인 것의 풍부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대한 부요함 즉 사랑의 풍부에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성서적인 금융위기극복방안을 교훈받을 수 있겠습니다. 모든 경제주체들이 도무지 맹세를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따라, 미래에 대한 자신과 자만과 교만을 떨쳐 버리고 미래는 온전히 하나님의 전적인 주관에 속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투자하고 차용하는 금융경제행위의 개혁이 이루어 져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지금의 금융자본제도도 금융확산의 풍부, 신용평가의 풍부, 규제완화의 풍부등 세상적인 것의 풍부에만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로서 가르쳐 주신 바에 따라 하나님의 것의 풍부, 즉 사랑적인 것의 풍부를 조장하는 제도와 정책의 혁신이 단행되어야 할 것이 요청됩니다. 이러한 금융경제행위의 개혁과 제도/정책의 혁신이 바로 제2의 대침체경제/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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