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저는 오제은교수가 쓴 [자기 사랑노트]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저자는 3년 반 동안이나 자살 충동에 시달렸던 대인기피증 환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사춘기 이후 거의 20년동안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품고 살아왔고, 아내와 자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또한 힘들다 못해 최악의 상태로 곤두박질치는 등 아픔과 상처로 가득한 인생이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내가 나인 줄 알았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며 살았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거기엔 진정한 기쁨이 없었습니다. 다른 것은 다 있는데 정작 ‘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랬던 그가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 변화의 체험담을 아주 솔직하게 적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꼭 읽어보시길 강력 추천합니다.

그 책에서 제가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던 사건이 있습니다. 269페이지에 <고통을 나눌 단 한 사람>이라는 글입니다. 저자는 보스톤 메모리얼 병원에서 PTSD 환자를 만납니다. PTSD란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극도의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뒤 나타나는 정신 신체적 후유 증세를 가리키는 의학 용어입니다. 시체가 나뒹구는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람들, 신체적 학대나 성폭행 피해자들, 극심한 불면증과 불안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이 해당됩니다. 저자는 스미스라는 60대 환자를 만나 상담하면서, 무력감에 빠집니다. 심한 알코올 중독에다 자살 기도를 수차례 시도했던 스미스와 마음을 연 대화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손을 가슴에 대고 기도합니다. ‘스미스의 고통을 나의 가슴으로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세요.”

그는 현실의 고통속에서 자신의 과거 기억속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죽었던 작은 형이 떠올랐습니다. 소아마비로 태어나 좋은 소리 한 번 못듣고 살았는데, 고장난 트랜스를 고치다가 감전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죽었던 형입니다. 그 작은 형은 저자를 유독 아끼고 사랑해주었지만, 저자는 작은 형의 짧고 가느다란 다리가 보기싫고 창피했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을 절름발이 형이 있다고 놀릴까봐 두려웠습니다. 작은 형은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그 형이 살던 암사동에 친구와 함께 찾아갔을 때, “어서 와라, 어서 와. 덥지? 잠깐 기다려봐. 시원한 것 좀 사올께. 뭐 마실래?” 동생(저자)은 “아무거나 먹지 뭐.”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형이 콜라를 사오자, 어쩐 일인지 자기 입에서 “아이, 씨… 나 환타 먹고 싶은데……”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이미 죽어버린 형을 앞에 놓고 상상속에서 동생은 형과 마음을 연 대화를 나눕니다. “형, 전에 콜라 대신 환타 사달라고 한 것도 미안해.” 비쩍 마른 한쪽 다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그토록 하고 싶었던 한 마디를 건넸습니다. “형, 그 때 뛰어갔다 오느라 얼마나 다리가 아팠어?”/ “형은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 네가 원했으면 아마 나는 널 업고도 다녔을거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난 네가 내 동생인 게 정말 좋아.” 자신의 죄의식 밑바닥에 짙게 남아있던 형의 존재. 그런 형에게 용서를 구하고 형의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 그 안에 있던 죄책감의 뿌리가 뽑혔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통받는 이웃에게 다가가서 ‘고통을 나눌 그 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고통속에서도 감사한 목사, 이기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