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사돈(査頓)과 밀월(蜜月)여행을 철의 삼각지(Iron Triangle)로 다녀왔다.

사돈(査頓)께서 한국방문 중인 우리 부부를 극진히 대접하려는 특단의 조치(?)로 조국통일의 안보교육현장으로 우리를 안내한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사돈(査頓)께서는 일찌기 동족상잔의 뼈아픈 과거를 경험하셨고, 훗날 추억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Mission School의 제자들에게 악명높은(?) 훈육교사로, 중등교사를 은퇴한 후에는 모 운송회사의 관리부장을 맡아 보면서 마을버스를 운행하며 지역 사회와 주민들에게 모범 기사로 인정되어 TV다큐에도 출연한 대통령 포상을 받은 국가 유공자이시기 때문이다.

아주 가볼만한 좋은 곳이 있다는 말씀만 듣고 승용차에 몸을 맡긴 지 서울에서 약 2시간 30분만에 도착한 곳이 평강, 철원, 김화를 잇는 지리상의 평야 삼각지대, 전략적 군사 요충지인 철(鐵)의 삼각지. 철의 삼각지란 말은 미 8군 사령관, JAMES A. FANFLEET 대장이 "적이 전(全) 전선(戰線)의 생명선으로 사수(死守)하려는 Iron Triangle(철(鐵)의 삼각지)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생겨난 이름이란다. 철원평야를 애지중지 하던 김일성이 이곳을 빼앗기고 3일간 식음을 전폐하고 울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비무장 지대를 견학하려면 철의 삼각지 전적관에서 등록을 마친 후 인솔자를 따라 통제소를 거쳐 제 2 땅굴, 평화 전망대, 월정리 역의 통일관을 볼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여행자가 직접 운전하여 비무장지대의 통제소를 통과 할 뿐아니라, 예전처럼 총을 든 군인이 인솔하지 않고, 어여쁜 젊은 도우미가 여행객의 승용차에 동승하여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한탄강 옆의 깍아지른 듯한 병풍바위.

전적관 바로옆에는 임꺽정의 전설이 담긴 고석정(孤石亭)과 한탄강변의 협곡이 자리하고 있다.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 옆에 깍아지른듯한 병풍바위가 늘어서 있고, 가운데 우뚝 솟은 고석바위가 자리했다. 이 바위의 큰 구멍안에 임꺽정 일당이 숨어지냈는데, 관군이 쳐들어 오면 임꺽정은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하여 한탄강으로 뛰어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예전에도 제 2 땅굴을 견학할 기회가 있었지만, 다시 이곳을 찾게 된 것이 미국생활 중 흐트러진 안보의식과 조국통일 염원, 애국심을 다시금 불러 일으키는 좋은 기회가 주어진 느낌이었다. 남침과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의 집념현장이 버젓이 남아 있음에도 국민들의 총체적 안보의식의 결여와 진보, 보수간의 이념적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니 천암함, 연평도 사건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은 아닐까?

▲철원 지역의 아름다운 철새들.

천연 기념물 두루미와 재두루미, 청둥오리, 독수리 등은 따뜻한 물과 추수 후 곡식 낱알이 풍부하게 널려있는 철원평야로 겨울을 나기위해 찾아드는 겨울철새들의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이 철의 삼각지내 비무장 지대이다.

맑은 날, 육안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북녘땅을 조망하기 위해 남방한계선 바로 앞에 평화 전망대를 세워놓고 관광객들에게 Multi-Media를 통한 안보 교육, 대북정책 홍보에 열중하지만, 역대 대통령의 사진을 전시한 곳에는 이념차이 때문인지, 국가에 대한 불만때문인지는 몰라도,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얼굴에서 눈을 뽑아버린 사진이 볼상사납게 버젓이 붙어있고, 과거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지녔던 전직 대통령의 방문기념비가 축대계단을 높이 쌓아놓은 터위에 덩그런이 놓여 있는데, 조경관리나 벌초도 하지 않은 탓에 무수한 잡초와 낙엽들로 뒤섞여있어 유심히 살피지 않고는 볼 수 없는 초라한 모습이 권력무상을 더욱 실감케 하였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의 현장, 월정역 옆에 있는 예전의 통일전망대는 두루미, 재두루미 등을 박제하여 철새들의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통일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번듯한 시설에 매 칸마다 화장지가 없는 화장실 청소관리는 관광객들을 황당하게 만든다. 도우미에게 물었더니 늘 화장지를 채워놓는데, 주민 중 누군가 가져가는 것 같단다. 요즘은 화장지가 없어서 지푸라기나, 뻣뻣하고 시커멓게 기름때가 묻어나는 신문지를 화장지로 사용하는 형편도 아닐텐데, 복지와 행복을 떠들어대는 나라의 국민의식수준이 이런것인가? 몇몇 외국인 관광객들과 동행하던 터라 한참이나 불편한 심기가 마음을 들쑤셨다.

동족상잔의 상흔이 남아있는 노동당사, 10일간 주인이 무려 24번이나 바뀌면서 피아(彼我)간에 2만 여명의 사상자를 낸 피의 현장, 한국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접전기록을 남긴 백마고지 전쟁터를 둘러보고, 유서깊은 천년의 고찰(古刹), 도피안사(到彼岸寺)라는 명성을 듣고 일부러 찾았는데, 독경소리와 목탁소리는 요란한데 좌불(坐佛)한 승(僧)이 법당에 없다. 낙엽이 쌓인 대웅전에 시주함(施主函) 큰 통이 덜렁 놓여 있고 녹음기만 윙윙 돌아갈 뿐이다. 중생을 구제하고 면벽참선(面壁參禪)을 한다는 승(僧)들은 도대체 어디로 갔는가? 피안(彼岸)에 도달했는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예레미야 9장23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