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동안, 이사할 때마다 그리고 컴퓨터를 바꿀 때마다 따라 나오는 부품과 전기선들을 버리지 못해 그대로 모아 놓았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둔다고 쓸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지만, 처리할 방도도 마땅치 않습니다. 그냥 버리자니 아깝고, 또한 환경에 끼칠 악영향을 생각하니 주저되었습니다. 지난 주간에 우연히 모아놓은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이제는 버릴 때가 되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것을 봉투에 넣어 쓰레기통에 넣고 돌아오는데, 뒤통수가 땡기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무슨 죄를 짓고 도망가는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문명의 시대를 사는 저는 때로 어쩔 수 없이 이 사회가 꾸민 거대한 범죄의 공범이 되고 맙니다. 문명의 이기를 모두 버리고 산촌으로 들어가 살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어느 정도는 공범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환경 파괴로 인해 지구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 거대한 문제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너무 제한되어 있습니다. 불필요한 낭비를 피하고 자원을 아끼려 해 보지만, 때로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요즈음 한국에서는 구제역이라는 전염병 때문에 수백만 마리의 소와 돼지들이 도살되고 있다고 합니다. 제 고향에도 소와 돼지를 사육하는 친척들이 계신데, 그분들의 피눈물이 느껴집니다. 또한 매장된 짐승이 만들어낼 환경 파괴를 생각하니 끔찍합니다. 먹잇감으로 사육되다가 비참하게 도살되는 짐승의 생명을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이것도 인간의 욕심과 문명이 만들어낸 범죄입니다. 문명사회가 거대한 육식 소비 사회로 변모하면서, 가축의 대량 사육이 농촌에서 가장 ‘돈 되는’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농촌 환경은 파괴되고, 농촌 사람들의 삶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광우병이나 구제역 같은 질병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생각하면 육식을 즐기는 것도 공범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쇠고기 1인분을 생산하는 데 곡물 8인분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가축의 대량 사육으로 인해 공기가 오염되고 지하수가 고갈됩니다. 우리는 무심코 스테이크를 찾지만, 그로 인해 우리는 의도하지 않은 환경 파괴의 범죄와 식량 위기의 범죄에 연루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육식 습관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철저한 채식주의를 실천한 적이 있는데, 그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 혼자 그렇게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겠지만, 내가 속한 사회가 범하고 있는 거대한 죄악에 대해 거부하는 몸짓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본래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이지만, 요즈음 사는 것이 때로 참 불편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것도 십자가를 따르는 ‘좁은 길’인데, 이 좁은 길을 기뻐 뛰며 걸었으면 좋겠습니다. (2011년 1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