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교수의 음성은 장내를 울렸다. 오래 전 뇌출혈로 아직 불편한 몸. 분명하다고 볼 수 없는 발음. 80에 가까운 나이. 그러나 가끔씩 책상을 치고 손을 휘저으며 김현식 교수는 격정을 토해냈다. 까만 두루마기를 입고 실내를 가득 메운 청중들과 떨어져 홀로 연단에 앉은 모습은 한국 분단의 아픔, 처절했던 김 교수의 가족사를 말없이, 하지만 무엇보다 생생하게 증언하는 듯 했다. 그런 무거운 분위기를 미안하게 느낀 듯 김 교수는 “나 같이 잘 생기지 못하면 북한에서 최고의 교수로 대접받을 수 없다”며 청중을 웃겼다. 미국 여성을 불러내 모스크바에서 수십 년 만에 만난 누님과의 재회 장면을 연출하는 열정도 보였다.

김 교수는 지난 23일 훼어팩스에 위치한 미국 ‘트루로(Truro)교회‘가 개최한 ’열방을 향한 북한 선교 강좌‘에 벤 토레이 신부와 함께 강사로 초청받았다. 그는 누가 창작했다고 해도 더 이상 극적일 수 없는 삶을 자세히 서술했다. 주일 아침이면 어머니가 새 옷을 입히고 헌금을 줘 교회에 보내던 얘기, 김일성 앞에서 수업을 하던 얘기, 총상을 입고 죽을 뻔 했던 얘기, 지금의 아내 김현자 여사를 만난 얘기, 그리고 그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자랑... 그리고 이렇게 끝을 맺었다.

“미국 병사를 적군으로 여기고 총을 들었던 18세 소년이 지금 여기 미국인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에 ‘평양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거라’ 하셨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지만 하나님은 저에게 평양말 성경을 쓸 수 있는 어학적 자질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나처럼 영어도 못하고 70이 훨씬 넘고 몸을 잘 못 쓰는 사람이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평양성경연구소(Pyongyang Bible Institute)를 세웠습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성경을 만들고 영어사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들의 의식과 관점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미국을 기독교 국가로 생각하기 때문에 직접 선교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북한은 지금 영어 붐이 일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스스로를 언어의 천재로 자처하면서 언어교육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싶어합니다.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이 때를 즈음해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말로 고쳐진 성경과 영어사전 등을 선물로 보내려고 합니다. 북한 지식인들의 생각을 바꿔놓을 좋은 기회입니다. 어머니와 누님과 아내가 했던 100년의 기도가 합쳐진 이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평양은 다시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트루로교회 성도들의 협력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이 사업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 주십시오.”

평양말 성경과 영어 교육을 통한 북한 복음화의 비전을 품고 있는 김 교수는 요한복음 등 신약 일부를 북한말로 번역했고 NET(New English Translation)'와 저작권 계약을 끝내 앞으로 작업이 훨씬 수월해졌다. 북한을 통한 이슬람 선교도 ‘열방을 품는 북한선교’가 지향하는 목표다.

김현식 교수 북한 선교 강좌는 한인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 ‘꿈이 있는 교실’ 디렉터로 있는 류정우씨가 통역했다.

후원 문의 : 202-492-8720

<워싱턴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