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 워렌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의 감격을 경험하고도 오래지 않아 기쁨도 감격도 시들해지고 방황하며 무기력하게 살고 있는 이유는 자신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을 분명히 깨닫고 난 후부터 제대로 된 인생을 살 수 있다. 그러기 전까지는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욕심에 휘둘리며 살기 쉽다.

최선의 삶은 하나님의 계획에 맞게 사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후에나 가능하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 체 적어도 60여 년을 보냈다. 아브라함이 끝까지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은 거기서 그렇게 끝났을 것이다. 다행히 늦게라도 하나님을 만났으니 75세가 넘은 노인이 믿음으로 사는 길을 갈 수 있었다. 아브라함에게서 인생의 가치는 이 때부터였다.

베드로는 정말 평범한 어부였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가 어떤 야망이나 비젼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요한을 따라다닌 형제 안드레가 베드로보다 더 꿈을 꾸던 사람 같다. 갈릴리 바다의 어부로 인생을 마칠 수 있었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통해 인생의 목적을 발견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해주겠다며 따라오라고 불렀다. 허망해 보이는 말 속에서 베드로는 존재 이유를 찾았다.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일이든 하며 한 평생을 살다 갈 것이다. 자기 인생의 목적을 깨닫는 특별한 계기가 없다면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좋든 싫든 먹고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면서 인생의 끝을 맞이하게 된다. 가끔은 후회하고 한탄할 때도 있지만 그것으로는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의 삶을 대신할 뭔가를 발견해야 한다.

자기 인생의 목적을 정확히 알고 그 목적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종종 똑똑한 사람들이 방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평생 살면서 성취해야 할 목적이 뭔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생명을 던져서라고 성취하고 싶은 그런 목적이 없다면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 쉽다. 그런 식으로 살아 온 부모들은 자식들에게도 자기들처럼 출세를 위해 살도록 다그친다.

아브라함이나 베드로도 인생의 목적을 모르고 방황한 때가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자기 인생의 목적을 알고 100m경주하듯 최단거리로 달려가는 사람이 어디 있나?아브라함은 60이 넘어서 하나님을 만났다. 그는 75세가 넘어서 하나님이 계획한 인생의 목적에 따라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중 누구라도 하나님이 계획한 목적에 맞게 사는데 너무 늦은 사람은 없다. 이제라도 인생의 목적을 찾아서 앞으로 몇 년을 더 살다 든 보람 는 인생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이것은 철학자들이 던져야 할 질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자기 인생을 두고 기도할 제목이다. 아직 자기 인생의 목적이뭔지 모르고 살고 있다면, 2011년을 시작하는 첫 주에 이 제목으로 기도하며방향과 길부터 찾기 바란다. 가만 있어도 하나님이 찾아와 지시해주면 좋겠지만 모든 사람에게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 시대에도 모든 사람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잖은가?

바울 사도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말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일반적인 것 말고 내 인생을 통해 성취해야 할 그런 뜻을 말한다. 내 삶과 상관없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서 뭐하겠는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너무 늦은 인생은 없지만, 그래도 가능한 일찍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위해 살 수 있다면 더욱 보람된 삶을 살 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