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로 아이티 지진 참사 1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해 1월 12일 오후 5시 12분에 일어난 지진은 지구상에서 잊혀져 있던 미주대륙 최초이며 유일의 흑인 공화국, 전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아이티를 전세계의 관심사 가운데로 이끌어냈습니다.

1월 12일 저녁 지진 소식을 듣고, 평소 관심을 갖고 기도하며 후원하던 고아원 소식에 조바심을 내다가 도미니카 산토 도밍고에 도착한 것이 14일 낮이었습니다.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구호팀에 합류하여 아이티 수도 포토 프랭스에 도착한 것이 1월 15일 밤. 구호품을 나누고 잠시 방문 가능한 고아원들에 들러 건물밖에 공터에서 비닐을 얼기설기 엮어 텐트를 만들고 자는 고아들을 만나고 아이티를 떠난 것이 1월 18일이었습니다.

당시는 지진 직후 식량 등의 문제로 점점 사회 분위기가 험해지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도미니카로 철수한 저녁에 아이티의 무너진 대통령궁에 미군 헬기가 내리는 장면이 CNN을 통해 보도되어 시간마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해 2월, 6월, 8월에 아이티를 방문했습니다.

지진은 정말 참혹한 잔해를 온 나라에 늘어놓고 무력한 인간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었습니다. 국제구호의 손길이 많이 늘었다고 했지만, 복구는 먼 길이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많은 나라, 많은 단체들이 구호의 보따리를 싸 아이티에 들어갔지만, 아무도 어떻게 도와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아이티는 아직도 지진 피해 복구가 20퍼센트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여전히 무너져 일년 전 모습이 그대로 있습니다. 대통령궁조차 무너진 건물 잔해를 치우지 않고 있으니 말해 무엇합니까?

식량이 원조되었지만, 고아원은 고립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 힘있고, 권력있는 사람들의 배를 불리고, 가난하고 연줄없고 힘없는 사람들의 배는 곯고 있습니다. 아이티는 확실히 지진 전보다 좋아졌습니다. 시장의 물건도 훨씬 다양하게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배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배고파합니다.

그리고 11월 콜레라가 발생을 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잘 걸리지도 않고 걸려도 이삼일이면 치료된다는 콜레라는 지난 연말 현재 3천 3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5만여명이 감염되었습니다. 유엔에서는 금년 중 40만 내지 60만명의 감염이 예상된다고 합니다.

깨끗한 물을 구할 수도 없습니다. 한 해 동안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을 여러 차례 만나고 콜레라가 겹쳤습니다. 지난 11월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의 후원을 받아 다시 아이티를 찾아 물을 정수하는 약들을 고아원에 나눠줄 때 고아원마다 쌀보다 더 반가워하는 모습이 당장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삼개월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콜레라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아이티 사람들도 콜레라를 무서워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손을 써야 하는지 모릅니다. 상하수도 시설이 전무하고 아직도 백 만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천막을 이어붙이고 삽니다. 요즘은 그나마 낮 최고 온도가 화씨 92도 안팎, 밤 최저 기온이 화씨 72도 안팎의 날씨여서 콜레라가 조금 진정된다고 하지만, 2월 이후 다시 우기가 닥치고 기온이 더 올라가면 아무도 어떤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장담하지 못합니다. 두려워서 말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게다가 대통령 선거와 의원선거에는 70개 정당이 난립하고, 대통령 후보만 열아홉 명이나 출마하는 후진 정치의 극단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염려하던대로 부정선거 의혹으로 폭동이 일어나 공항이 한동안 폐쇄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지금 아이티의 재앙은 망각입니다. 지진이 일차적 재앙이었고, 콜레라가 이차 재앙이었다면, 지금 아이티는 세번째 재앙에 직면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잊히고 있는 것입니다.

아이티는 잊혀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잊히면 소망이 없습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일이개월 전 세계는 아이티를 향해 뜨거운 마음을 풀어놓았습니다. 모든 교회가 헌금을 하고 전세계의 크고 작은 모든 구호단체들이 아이티에 집결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구호단체 관계자들이 아이티의 뜨거운 햇볕 아래 아이티의 상처를 돌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장의 관심을 갖고 있는 현지 구호 관계자들 외에 모든 이들에게 아이티는 망각의 그늘에 숨고 있습니다.

지진 발생 당시에 많은 구호단체에 성금이 몰리고, 교회들이 많은 헌금을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구호금으로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 헌금의 일부는 지진 피해자들의 구호에 쓰였지만, 일부는 당장 배고픈 현장에 쌀값, 빵값, 의료품 값으로 가지 않고 선교단체를 빙자한 여러 단체의 센터 건축 기금으로 비축되고 잊혀졌습니다.

아이티 지진 1년은 아이티의 많은 것을 바꾸었습니다. 잠시 소망에 들뜨게도 했습니다.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은 전 세계인의 손을 잡았을 때였습니다. 아이티는 아직도 혼자 일어설 수 없습니다. 아이티는 아직 지진의 참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돈도 잊히고 사랑도 식어가고, 그리고 세상의 따스한 손길 한 번 잡아봤던 지진 피해자들과 고아들의 가슴은 허망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아원 후원하겠다고 찾아와 자기들 간판 걸고 사진 찍고 돌아가 소식이 없다며 한탄하는 현지인 고아원 원장 목사님의 푸념도 들어줘야 했습니다.

지진 피해를 입은 건물 수십 만 채가 아직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죽어 묻힌 사람들도 그대로 있습니다. 일 년이 지났습니다. 그들의 맨손으로는 젓가락 같은 철근, 부석거리는 시멘트 잔해이지만 치울 수가 없습니다.

공부하고 싶다는 고아들을 많이 보지만, 학교는 여전히 너무 먼 곳, 소망의 상상 속에 존재할 뿐입니다. 하루 두 끼를 먹는 데 차라리 고아원이 나을 수도 있겠다 싶은 마을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기억나시면 아이티를 위한 기도를 다시 시작해주십시오. 구호단체들을 통해 진행되는 사역들에 관심을 가지시고 평소 관심을 갖고 계시거나 연관이 있으신 구호단체에 후원을 계속해 주십시오. 작은 것이라도 꾸준히 해주시는 것이 좋습니다.

지진 나고 다섯 번째 아이티를 찾았더니, 고아들이 먼저 와서 품에 안겼습니다. 통역을 하던 젊은 친구가 진심으로 한 마디 했습니다. “다들 7, 8월에 한 번 왔다 가면 그만인데, 이렇게 여러 번 찾아와 우리를 도와주니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평소에 통역하는 친구들은 우리가 쌀가마를 날라도 구경만 했었습니다. 이제는 함께 일합니다. 쌀을 나르면, 쌀을 나르고, 아이들을 안아주면 같이 놀아줍니다.

사랑은 함께, 그리고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2월 말에 어린이재단 후원을 받아 아이티를 다시 갑니다. 쌀 사주고, 다시 정수약을 사주러 갑니다. 하지만, 우리 예산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또 돈 이야기를 합니다.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아이티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혼자 걸을 때까지 먹여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6)“. 지금은 우리가 아이티를 향한 축복의 통로, 사랑의 통로가 되겠지만, 아이티는 분명히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이웃인 아이티는 분명히 일어설 것입니다. 우리가 잊으면 하나님께서는 다른 이들을 통해서라도 하실 것입니다.

그동안 아이티를 잊지 않고 기도해주시고 후원해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헬핑 핸드 미션 네트웍 대표
조항석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