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0년 1월 16일, 뉴 밀레니엄(New Millenium)의 흥분이 채 가시기도 전에 북한에 납치된 김동식 목사의 소식이 끊긴지가 벌써 11년째다.
김동식 목사는 그후 1년만인 2001년 1월,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몸무게가 35kg로 줄어든 채 북한의 한 감옥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이 2007년 알려졌다.
북한 ‘김씨 왕조’는 김 목사를 납치해 온갖 위협과 회유로 김일성 주체사상으로의 전향과 탈북자를 도운 과거의 회개를 강요했으나, 그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이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결국 1년만에 순교했고, 평양 근교 상원리 조선인민군 91훈련소 위수구역 내에 안장됐다.
이후 2008년 1월 기독교사회책임을 중심으로 북한인권운동가들이 모여 ‘김동식 목사 유해송환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조직돼 매년 1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북한은 납치 자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 2006년과 2010년 납치에 가담한 중국 동포들과 북한 공작원 등이 정부 당국에 붙잡혀 뚜렷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북한은 물론 우리 정부조차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야 지난 2008년 9월 제성호 대한민국 인권대사가 김 목사의 미망인 주양선(가명) 선교사와 면담을 했고, 2010년 2월 외교통상부가 주미 시카고영사를 통해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주 선교사를 위로 방문했을 뿐이다.
현재 미망인 주 선교사는 10년째 행방조차 모르는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 유방암 등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우울증까지 찾아오게 돼 현재 시카고의 한 요양원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상태다.
이같은 상황에서 12일 오전 서울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김동식 목사 유해송환운동본부 주최 ‘김동식 목사 피랍 11주기 및 순교 10주기 납북자 송환기도회 및 국민대회’는 故 김 목사를 비롯한 납북자와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북한 측에 성토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김규호 목사(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사회로 열린 1부 추모예배 및 기도회와 2부 국민대회로 나뉘어 열렸다. 추모예배에서는 故 김 목사와 함께 장애인 선교를 함께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인권위원장 김양원 목사(국가인권위원)가 요한계시록 6장 9-11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김양원 목사는 “김동식 목사님은 1980년대 영혼 구원에 헌신하시고, 1980년대 후반에는 장애인 복지를 위해 일하시다가 1990년대부터 탈북자들과 그 자녀, 북한 동포들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하셨던 분”이라며 “그 뜨거운 열정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으로서 새삼 고개가 숙여지고, 웃고 계신 김 목사님의 현수막 사진을 보니 새삼 그 웃음이 그리워진다”고 서두를 열었다.
김 목사는 “초대교회 스데반과 신대륙으로 건너왔던 청교도들이 그러했듯 기독교는 무엇보다 순교의 피를 통해 자라나는 종교”라며 “김 목사님이 흘리신 피를 통해 평양을 비롯한 북한 지역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음을 감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문에서 보듯 순교자들을 가장 자신의 가까운 곳에 두시는 주님께서 지금 김 목사님 옆에 함께 계시리라 믿는다”며 “김 목사님의 희생을 통해 북한 전역이 복음화되고, 1백년 전 평양에서 있었던 대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양원 목사는 또 “김 목사님이 이렇게 희생하시고 1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풍요로움에 갇혀 안일하고 나태하게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자세로 주님 말씀을 외면하고 있다”며 “고인은 이 모습을 보시며 뭐라 하실까, 죽어가는 북한 영혼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라고 탄식했다.
김 목사는 “주님은 지금 제2의 김동식 목사님을 찾고 계시며,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며 “저와 여러분들이 가진 걸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나누고, 피는 흘릴 수 없더라도 살아있는 순교자가 돼야 김동식 목사의 피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교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기도회에서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개선을 위해(최종순 성광교회 목사)’, ‘김동식 목사의 유해송환과 유가족을 위해(김광식 토브교회 목사)’, ‘납북자 및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위해(정베드로 북한인권단체연합회 사무총장)’, ‘정부와 국회의 강력한 납북자 송환정책 추진을 위해(안희환 대한민국미래 대표)’ 등을 놓고 함께 기도했다.
최충하 목사(예장대신 총무) 사회로 계속된 2부 국민대회에서는 김용원 목사(한국장애인선교단체연합회장)와 도희윤 대표(피랍탈북인권연대)의 인사말, 문국한 대표(북한인권국제연대)의 경과보고, 김성곤 이사(YFC십대선교회)의 성명서 낭독, 유치경 목사(한국장애인문화예술선교회장)의 구호제창 등이 이어졌다.
유가족 답사에 나선 김동식 목사의 처남 정세국 선생은 “김 목사님의 뜻을 기리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드린다”며 “저에게는 매형이지만, 그 분은 이미 가족을 넘어 한반도 평화통일과 한국교회의 제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선생은 이어 “저희 어머니가 올해로 구순이신데, 10년 전 김 목사님 소식을 듣고 팔순잔치를 거부하셨다”며 “지금은 치매가 와서 사람들을 제대로 못 알아보시지만, 김동식 목사님 기도는 하고 계신다”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김동식 목사 유해송환운동본부는 행사 후 회의를 열고 향후 활동방향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최소한 분기별로 김동식 목사에 대한 추모 및 납북자 송환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운동본부는 지난해 1월 피랍 10주기 송환기도회 이후 매월 故 김 목사가 속했던 예장고신 교회들을 돌며 기도회를 열기로 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이와 함께 회의에서는 처남 정세국 선생이 갖고 있던 김동식 목사의 각종 자료들을 기증하기로 해, 이를 전시하고 김 목사를 기념하는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다. 정 선생은 유품을 비롯해 자료사진들과 김 목사가 돌보던 ‘꽃제비’들로부터 온 편지 등을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도회 및 국민대회는 운동본부 외에 기독교사회책임과 피랍탈북인권연대, 한국장애인선교단체연합회 등이 공동 주최했고, 국회인권포럼과 북한인권단체연합회, 한기총 인권위원회 등이 후원했다. 기도회에는 황우여 의원(국회인권포럼 회장), 박원영 목사(해피나우 사무총장) 등도 참석했다.
김동식 목사는 그후 1년만인 2001년 1월, 고문 후유증과 영양실조로 몸무게가 35kg로 줄어든 채 북한의 한 감옥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이 2007년 알려졌다.
북한 ‘김씨 왕조’는 김 목사를 납치해 온갖 위협과 회유로 김일성 주체사상으로의 전향과 탈북자를 도운 과거의 회개를 강요했으나, 그는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는 이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결국 1년만에 순교했고, 평양 근교 상원리 조선인민군 91훈련소 위수구역 내에 안장됐다.
이후 2008년 1월 기독교사회책임을 중심으로 북한인권운동가들이 모여 ‘김동식 목사 유해송환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조직돼 매년 1월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북한은 납치 자체에 대해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 2006년과 2010년 납치에 가담한 중국 동포들과 북한 공작원 등이 정부 당국에 붙잡혀 뚜렷한 사실이 드러났지만, 북한은 물론 우리 정부조차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야 지난 2008년 9월 제성호 대한민국 인권대사가 김 목사의 미망인 주양선(가명) 선교사와 면담을 했고, 2010년 2월 외교통상부가 주미 시카고영사를 통해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주 선교사를 위로 방문했을 뿐이다.
현재 미망인 주 선교사는 10년째 행방조차 모르는 남편을 잃은 슬픔 속에 유방암 등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우울증까지 찾아오게 돼 현재 시카고의 한 요양원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는 상태다.
국회에서 열린 김동식 목사 피랍 11주기 및 순교 10주기 납북자 송환기도회 및 국민대회 모습. ⓒ이대웅 기자 |
이같은 상황에서 12일 오전 서울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김동식 목사 유해송환운동본부 주최 ‘김동식 목사 피랍 11주기 및 순교 10주기 납북자 송환기도회 및 국민대회’는 故 김 목사를 비롯한 납북자와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북한 측에 성토하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김규호 목사(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 사회로 열린 1부 추모예배 및 기도회와 2부 국민대회로 나뉘어 열렸다. 추모예배에서는 故 김 목사와 함께 장애인 선교를 함께했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인권위원장 김양원 목사(국가인권위원)가 요한계시록 6장 9-11절을 본문으로 설교했다.
김양원 목사는 “김동식 목사님은 1980년대 영혼 구원에 헌신하시고, 1980년대 후반에는 장애인 복지를 위해 일하시다가 1990년대부터 탈북자들과 그 자녀, 북한 동포들을 위해 몸 바쳐 헌신하셨던 분”이라며 “그 뜨거운 열정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으로서 새삼 고개가 숙여지고, 웃고 계신 김 목사님의 현수막 사진을 보니 새삼 그 웃음이 그리워진다”고 서두를 열었다.
김 목사는 “초대교회 스데반과 신대륙으로 건너왔던 청교도들이 그러했듯 기독교는 무엇보다 순교의 피를 통해 자라나는 종교”라며 “김 목사님이 흘리신 피를 통해 평양을 비롯한 북한 지역에도 복음이 전파되고 있음을 감사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문에서 보듯 순교자들을 가장 자신의 가까운 곳에 두시는 주님께서 지금 김 목사님 옆에 함께 계시리라 믿는다”며 “김 목사님의 희생을 통해 북한 전역이 복음화되고, 1백년 전 평양에서 있었던 대부흥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역설했다.
김양원 목사는 또 “김 목사님이 이렇게 희생하시고 1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사이에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성도들은 풍요로움에 갇혀 안일하고 나태하게 ‘여기가 좋사오니’라는 자세로 주님 말씀을 외면하고 있다”며 “고인은 이 모습을 보시며 뭐라 하실까, 죽어가는 북한 영혼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은 어떠실까”라고 탄식했다.
김 목사는 “주님은 지금 제2의 김동식 목사님을 찾고 계시며, 우리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한다”며 “저와 여러분들이 가진 걸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나누고, 피는 흘릴 수 없더라도 살아있는 순교자가 돼야 김동식 목사의 피가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교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기도회에서는 ‘북한 동포들의 인권개선을 위해(최종순 성광교회 목사)’, ‘김동식 목사의 유해송환과 유가족을 위해(김광식 토브교회 목사)’, ‘납북자 및 국군포로들의 송환을 위해(정베드로 북한인권단체연합회 사무총장)’, ‘정부와 국회의 강력한 납북자 송환정책 추진을 위해(안희환 대한민국미래 대표)’ 등을 놓고 함께 기도했다.
최충하 목사(예장대신 총무) 사회로 계속된 2부 국민대회에서는 김용원 목사(한국장애인선교단체연합회장)와 도희윤 대표(피랍탈북인권연대)의 인사말, 문국한 대표(북한인권국제연대)의 경과보고, 김성곤 이사(YFC십대선교회)의 성명서 낭독, 유치경 목사(한국장애인문화예술선교회장)의 구호제창 등이 이어졌다.
유가족 답사에 나선 김동식 목사의 처남 정세국 선생은 “김 목사님의 뜻을 기리는 분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드린다”며 “저에게는 매형이지만, 그 분은 이미 가족을 넘어 한반도 평화통일과 한국교회의 제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선생은 이어 “저희 어머니가 올해로 구순이신데, 10년 전 김 목사님 소식을 듣고 팔순잔치를 거부하셨다”며 “지금은 치매가 와서 사람들을 제대로 못 알아보시지만, 김동식 목사님 기도는 하고 계신다”고 말해 장내를 숙연하게 했다.
김동식 목사 유해송환운동본부는 행사 후 회의를 열고 향후 활동방향을 논의했다. 회의에서는 최소한 분기별로 김동식 목사에 대한 추모 및 납북자 송환기도회를 열기로 했다. 운동본부는 지난해 1월 피랍 10주기 송환기도회 이후 매월 故 김 목사가 속했던 예장고신 교회들을 돌며 기도회를 열기로 했지만 무산된 바 있다.
이와 함께 회의에서는 처남 정세국 선생이 갖고 있던 김동식 목사의 각종 자료들을 기증하기로 해, 이를 전시하고 김 목사를 기념하는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다. 정 선생은 유품을 비롯해 자료사진들과 김 목사가 돌보던 ‘꽃제비’들로부터 온 편지 등을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기도회 및 국민대회는 운동본부 외에 기독교사회책임과 피랍탈북인권연대, 한국장애인선교단체연합회 등이 공동 주최했고, 국회인권포럼과 북한인권단체연합회, 한기총 인권위원회 등이 후원했다. 기도회에는 황우여 의원(국회인권포럼 회장), 박원영 목사(해피나우 사무총장) 등도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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