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Steven Paul Jobs, 1955년 2월 24일 - )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학생이었던 그의 어머니에 의해 캘리포니아 주 산타 클라라에 사는 폴/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잡스 부부는 그에게 스티븐 폴 잡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그는 “양부모”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했고, 폴과 클라라 잡스 부부를 유일한 부모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를 자주 빼 먹는 문제아였지만,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2가지 남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전자제품과 컴퓨터를 작동하는 일을 미치도록 좋아했다는 것이 하나였고, 한 번 목표를 세우면 반드시 이루고야 만다는 것이 다른 하나였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캘리포니아 팔로 알토에 있는 휴렛 패커드사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고, 여름에 그 회사에서 임시 직원으로 일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7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오리건 주에 있는 리드 대학교(Reed College)에 등록하여 철학을 공부하였지만 당시 근로자였던 양부모가 저축한 모든 돈이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기에, 그는 대학에 다니는 가치가 너무 빈약하다고 생각하고 입학한지 6개월 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청강생으로 일 년 반 정도 그 학교에서 생활했습니다.

당시에는 자퇴가 꽤 두려웠지만 되돌아보면 그것이 그의 인생에서 내린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였다고 그는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자퇴 후 관심 없었던 필수과목 대신 듣고 싶었던 강의를 청강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리드 대학교는 글씨체 교육이 뛰어났습니다. 잡스는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글씨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는 세리프와 산세리프 글씨체를 배웠습니다. 서로 다른 자모의 결합에 따라서 자간을 달리 둠으로써 훌륭한 서체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웠고 섬세한 예술이었습니다.

잡스는 여기에 매료되었는데, 십 년 후 그것은 잡스가 최초의 매킨토시 컴퓨터를 설계할 때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가 매킨토시와 글씨체를 접목시키자 미려한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가 탄생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제가 만약에 그때 서체 수업을 청강하지 않았더라면 매킨토시는 아름다운 서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1976년에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로널드 웨인(Ronald Wayne)과 함께 애플 사를 공동 창업했습니다. 잡스는 얼마 후에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 애플 1을 공개했고, 애플 2를 통해 개인용 컴퓨터를 대중화하였습니다.

잡스는 애플 초기에 펩시콜라의 사장인 존 스컬리를 영입하려고 했습니다. 대기업의 사장자리를 버리고 신생기업으로 가기를 망설이던 스컬리에게 잡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남은 일생 동안 설탕물이나 팔면서 살 겁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꾸시겠습니까?”(Do you want to sell sugar water for the rest of your life, or do you want to come with me and change the world?) 이 말을 들은 존 스컬리는 망설임 없이 애플로 이적했다고 합니다.

엄청난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는 갑작스러운 성공으로 인해 교만해졌고,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는 불화를 빚은 끝에 결국 자신이 창업한 회사에서 쫒겨하게 됩니다. 1985년 서른 살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잡스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섭니다.

애플 사에서 나온 그는 넥스트(NeXT) 컴퓨터를 창업하여 새로운 개념의 운영체제를 개발하였고, 픽사(Pixar)를 인수하여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를 제작하여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는 1996년 애플이 ‘넥스트’를 인수하게 되면서 다시 애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후 잡스는 애플의 CEO로 복귀해 아이팟(iPod), 아이튠즈(iTunes), 아이폰(iPhone)을 만들면서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는 1997년 10억 달러의 적자를 낸 애플을 한 해만에 4억 달러에 가까운 흑자를 내게 만들었습니다. 잡스는 그 후 아이패드(iPad)를 제작하여 또 한 번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잡스는 지난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애플에서 해고 당한 것은 결과적으로 내게 최상의 사건이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는 이 일로 인해 성공에 대한 중압감이 사라졌고, 인생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또 다른 시련이 있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의 건강이 악화되어, 2004년에는 췌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 살 것이라는 진단을 내렸지만 다행히도 수술을 받아 회복하게 됩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그는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삶의 시간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나 이야기에 얽매여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라고 당부합니다. 그는 계속 말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심장과 직관이 이끄는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심장과 직관은 당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인생의 굴곡을 수없이 경험하였지만 늘 꿈을 꾸고 있었고, 그 꿈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어느 철학자는 “과거는 영원히 정지되어 있고, 현재는 쏜 살같이 날아가며 미래는 주저 주저 하며 다가온다”고 말했습니다. 지나간 과거로 인해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지 마시고 내일을 향해 꾸준히 정진하여 인생의 큰 그림을 완성하시기 바랍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3-14).

권석균 목사, 남침례신학교(Ph.D) / 애틀란타 지구촌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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